▲ 제천시 금성면 위림리. 마을 주민들이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를 볏짚으로 막아 외지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제천=이대현 기자

“큰집이 차로 10분 거리인데도 설 쇠러 못가유.”

끝날지 모르고 기승을 부리는 구제역이 민족 최대 명절인 설 풍속도까지 확 바꿔놓고 있다.

발생지 주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가족들의 방문 자제를 호소하고, 전화로 세배를 대신하는 등 웃지못할 설 풍속도를 낳고 있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이틀 앞둔 1일 오후 제천시 금성면 중전리 마을 입구. 제천시내에서 차로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이 곳은 제천에서 두 번째로 구제역이 터진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파란색 천막을 쳐 만든 방역 초소에서 만난 이장 정운현 씨는 “아들이 가까운 충주에 있는데, 구제역을 옮길까 걱정돼 명절 때 오지 말라고 했다”며 긴 한숨부터 내뿜었다.

정 씨는 마을에서 불과 2~3㎞ 떨어진 큰집에도 올 설에는 구제역 때문에 갈 수 없게됐다고 하소연했다.

정 씨는 “큰집 바로 옆 집에서 소를 키우는데, 혹시 옮길까봐 걱정 돼 못간다고 큰집 형님한테 전화했다”며 또 한번 긴 한숨을 내쉬었다. 천막 안 한쪽 구석에 놓인 기다란 책상 위에 우편물이 잔뜩 쌓여있는 게 눈에 띄어 정 씨에게 물었다. 이유는 뻔했다.

정 씨는 “구제역이 터진 후에는 집배원도 마을 안으로 못 들어간다”며 “주민들이 초소에 와서 우편물을 찾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씨가 말한 마을의 사정을 들으니 ‘명절인데 어떻게 하실거냐’ 자꾸 물어보는 것 자체가 결례인 것 같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

마을이 생긴 이래 첫 구제역이 터져 ‘감옥’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144명의 주민들은 하루빨리 구제역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승용차 핸들을 다시 중전리에서 처음 구제역이 터진 송학면 도화리 쪽으로 틀었다.

송학면으로 가면서 지났던 금성면 구룡·위림·도화리 등 마을 곳곳에는 ‘구제역 예방을 위해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아예 마을 입구를 트랙터와 트럭, 볏짚, 흙더미로 막아놓은 곳도 많았다. 제천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송학면 도화 1리. 모산동 의림지쪽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 설치된 고정형 소독시설에서는 차량이 통과할 때마다 눈발같은 소독약을 연신 뿜어댔다.

방역 지원에 나선 의경들도 손에 휴대용 분무 소독약을 쥔 채 바삐 움직였다. 차량과 차량 내부, 신발까지 소독한 뒤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들어선 마을은 녹지 않은 눈과 생석회 가루가 뒤섞여 온통 새햐얗게 느껴졌다.

이 마을에 들어서면서 마주친 첫 느낌은 ‘적막’ 그 자체였다. 마을 곳곳에서 눈에 띈 빈 축사는 흉물스러운 철재 뼈대만 앙상했다.

마을을 오가는 차량은 거의 없었고, 방역 초소 근무자들 외에는 바깥에서 주민들을 만날 수 없었다.

주민은 물론, 외지인들의 출입을 전면 통제하기 때문이다. 마을 중간에 설치된 대인 소독기를 통과하니 전형적인 시골마을 슈퍼가 눈에 들어왔다.

부산에서 시집 와 20년 넘게 이 곳에서 슈퍼를 운영한다는 70대 여주인은 “매년 명절 때면 부산에 있는 딸과 아들이 왔는데, 올해는 천상 부부끼리만 설을 나게 생겼다”며 “처음 터진 구제역 때문에 공원묘지 성묘객들도 뚝 끊겨 잘 팔리던 조화도 지금껏 못 팔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마을에는 대규모 사설 공원묘원이 운영 중이지만 시와 묘원 측이 성묘 자제를 호소하고 나서면서 최근 성묘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구제역 탓에 마을 민심도 흉흉해졌다. 구제역 발생 농장주가 이동자제 명령을 어겨 시로부터 고발 당할 처지에 놓이면서 원망도 커지고 있다.

한 주민은 “구제역 발생 농장주에게는 미안해 말은 못해도 구제역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고생하는 주민들의 원망은 말도 못한다”면서 “혹시라도 자식들이 명절 때 왔다가 구제역이 또 터졌다는 이웃들의 원망을 듣고 싶지 않아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이 마을 이운표 이장은 “구제역 예방을 위해서는 설 때 타지인들이 방문하지 않는 게 최상이지만 그렇다고 강제로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중간에서 입장이 무척 곤란하다”면서 “무엇보다도 구제역이 생긴 후부터 보이지 않는 주민들 간의 오해와 갈등이 생긴 것 같아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제천지역에는 지난 15일 이 마을에서 첫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이날 현재까지 모두 6건의 구제역이 발생했다.

제천=이대현 기자 lgija200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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