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풀린 구제역, 천재(天災) 아닌 인재(人災)
재난(災難)의 시대다.
하룻밤 새 가족처럼 함께 생활하던 가축들이 차가운 땅밑에 생매장 당하는 오늘의 현실은 분명히 재난이다.
수백억 원의 자금을 투입해 방역체계를 강화하고 인력을 보강하며, 수 많은 가축을 ‘예방적’이라는 명분으로 살처분·매몰 처리를 하고 있어도 고삐 풀린 구제역을 통제하기에 역부족이다.
결국 국가적 차원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제역은 국내 축산업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으며, 그동안 맹신하던 과학과 이성을 기반으로 한 생산력 발전과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이와 관련 구제역 통제 실패 원인에 대한 진단과 환경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들이 미묘한 대립을 보이고 있으나, 이들 모두 구제역을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로 바라보는데 이견은 없다.
이번 사태를 ‘천재(天災)’로 치부할 경우 이번 구제역 재앙은 인간의지와 관련없이 자연의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재난으로 인식됨에 따라 어느 누구도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구제역이 국가재난 수준으로 확산된 것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특히, 최초로 구제역이 발생한 경북 안동의 돼지농가에 대한 정부의 초동대처 실패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23일 안동 돼지농가에서 구제역 의심신고가 접수됐지만, 이를 6일이나 방치하고 있는 사이에 안동 지역의 한우 15마리가 경기와 경남 등으로 이동됐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의 안이한 대응도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구제역의 강력한 전염력을 고려한다면 초기 발생 시 가능한 인력과 장비를 동원해 집중적인 방역활동을 펼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후 정부는 ‘준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뒤 늦은 대응을 벌였으나, 이미 구제역 방역은 구멍난 상황이다.
이와 함께 백신접종을 비장의 카드로 들고 나왔으나 접종 방법을 비롯해 백신 물량과 인력 부족 등 백신접종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추진하고 있는 처지다.
일각에는 자칫 이번 접종에 구체적인 매뉴얼이 마련되지 않을 시 ‘제2의대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지난 1997년 구제역 발생으로 인해 4000여 만개의 백신을 접종 실시했지만, 이후 관리 체계가 미흡해 주기적으로 구제역이 창궐해 축산업이 완전 몰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2000년과 2002년에 이어 지난해에 구제역이 반복적으로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구제역 관련 연구시설 확보 및 인프라 구축을 위한 노력이 전무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한편, 육식에 대한 인간 탐욕이 부른 공장형 축산업이 구제역의 근본 원인이라는 환경론자들의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근대화로 인해 가능해진 대량소비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구제역 창궐 등 생태계 파괴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25일 현재 여전히 많은 가축들이 매몰되고 있으며, 전국 각지에서 구제역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등 국내 축산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 위기를 거울삼아 구제역 위기의 원인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반성을 통해 한발 전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박재현 기자 gaemi@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