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논란을 둘러싸고 ‘제2의 세종시’ 사태로 비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충청민심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특히 청와대 비서관 등을 통한 대통령 공약 파기 의사 피력과 정부의 백지화 움직임,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 등은 과학벨트 논란이 세종시 사태와 ‘닮은 꼴’ 수순을 밟고 있다는 점에서 충청인은 세종시 사태를 겪었던 지난 한 해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는 분위기다.
그러나 충청 정치권은 이런 민심을 담아내고 폭발시키거나 청와대와 정부를 상대로 교섭·협상·압박할 능력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다.
과학벨트의 경우 지난해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직후부터 의심스러운 부분들이 감지됐고, 그동안 과학계 등 각계각층에서 경고 메시지를 수 차례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충청 정치권과 대전·충남·충북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렇다 할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올해 초 청와대와 정부가 ‘과학벨트 입지 전국 공모’ 방침을 굳힌 이후에야 허둥지둥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충청권 3개 시·도지사 및 지역 국회의원 등은 지난 17일 과학벨트 충청권 추진협의회 발대식을 통해 ‘공동 대응’을 다짐했고, 자유선진당과 민주당 등 야당들도 최고위원 회의를 대전에서 열고 각종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지만 “이런 사태가 될 때까지 뭐 했느냐”는 질책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정치권의 수동적인 활동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정치적 생명을 건 초당적 대응은 고사하고 정당·정파, 이해관계에 얽히고 눈치 보기와 ‘덧셈 뺄셈’ 행보를 하면서 사분오열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여론 밑바닥에서 충청 정치권을 향해 ‘이완구에게서 배우라’라는 따끔한 질책이 나오는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이던 지난해 3월 이완구 당시 충남도지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행정도시 원안 추진에 도지사직을 걸겠다는 약속을 했다”며 “세종시 수정이 공론화한 지금 누군가는 법집행이 중단된 점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사퇴를 선언했다.
여당 소속 도지사가 스스로 정치 생명을 자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사퇴’라는 카드를 던지면서 당시 여권에 적잖은 부담을 안겨줬을 뿐만 아니라 충청민심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폭발력을 배가시키는 촉발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과학벨트 논란 과정에서 보이고 있는 충청 정치권의 모습은 ‘논란의 담 밖’에서 맴도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과학벨트를 놓고 정당별로 경쟁하듯 ‘똘똘 뭉쳐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치적 단합을 위해 손을 내미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여당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쏟아내면서도 논란을 종식시킬 ‘카드’는 내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여기에 일부 의원들은 벌써부터 ‘충청홀대론’이란 정치적 우산 속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이 같은 충청 정치권의 난맥에 대해 충청민심은 냉철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으며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지역 원로들의 엄중한 충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선우 기자 swlyk@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