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하고 싶어 법이 베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줍니다.”

법원이 실형선고 처지에 놓인 피고인 2명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형벌 대신 관용을 베풀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17일 청주지법에 따르면 회사원 안모(39) 씨는 지난 2007년 10월부터 2010년 8월까지 12차례에 걸쳐 부인을 폭행해왔다. ‘집안이 지저분하다’ 등의 사소한 이유로 승강이를 벌인 게 화근이었다.

폭행을 견디다 못한 부인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안 씨는 지난해 9월 상습폭행 혐의로 구속됐다.

혐의가 입증됐는데도 줄곧 폭행사실을 부인해 온 안 씨는 지난 14일 선고를 받으려 법정에 섰다.

안 씨는 상습적으로 폭행을 일삼은 데다 부인이 강력한 처벌을 요청하면서 실형선고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법원은 안 씨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경고하며 실형이 아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석방했다.

청주지법 형사1단독 윤영훈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과 피해자가 서로 반쪽의 진실을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철저히 무너뜨리는 것은 부부 사이가 철천지원수가 되는 것을 넘어 자식들에게 부모로서의 존재를 부정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판사는 “8개월, 32개월 된 자녀는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로, 죄 없는 아이들은 부모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조부모 손에 크고 있다. 피고인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다할 기회를 주고자 한다”면서 “특히 피고인이 수감생활 동안 부인에 대해 품고 키웠을 원망과 증오의 감정을 훌륭한 아버지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승화시키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윤 판사는 전국을 무대로 28차례에 걸쳐 56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훔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문모(31) 씨에게도 징역 1년에 집유 3년을 선고했다. 공범 2명에게는 징역 2·3년이 각각 선고됐다.

윤 판사가 선처를 베푼 데는 문 씨 부인 A 씨의 눈물겨운 노력이 큰 몫을 했다.

2009년 12월 결혼한 A 씨는 남편의 범행을 알고 이혼을 하려다 오는 21일 돌을 앞둔 아들을 생각해 마음을 돌렸다. A 씨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피해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갖은 수모를 겪고 28명 중 27명과 합의하고, 1명에 대해선 일정금액을 공탁했다. 오로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윤 판사는 “피고인의 부인이 가족을 살리려고 애절한 몸짓으로 눈물겨운 기도를 했다”며 “피고인에게 법이 베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엄중히 경고하고 가장으로서 제대로 살아갈 것을 당부하며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판시했다.

하성진·고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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