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화재가 발생한 대전 중구 선화동의 한 여인숙에 20일 소방관계자들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김호열기자 kimhy@cctoday.co.kr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백화점의 그늘에 가려진 골목길. 오가는 인적조차 드물다. 사과상자를 비롯한 종이류가 가득한 파지 수거 수레가 이곳의 삶을 대신한다.

20일 기자가 찾은 곳은 대전 동구 정동·중앙동, 중구 선화동·은행동 일대 독거노인, 노령퇴직자, 일용직 근로자 등 800여 명의 쪽방 거주민이 생활하는 이른바 ‘쪽방촌’이다.

지리적으로는 대전의 중심이지만 불행하게도 이미 사회와 대중들의 관심과 기억에서 희미해진 ‘변경(邊境)’이다.

지난 18일 선화동 A여인숙에서 발생한 화재로 장기세입자 신모 씨가 세상을 등진 것도 이미 대중들의 뇌리에서는 ‘지나간 뉴스’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지근거리에 있는 백화점과 상가에서는 연말을 맞아 다양한 경품과 이벤트로 대중들의 발길을 돌려세우고 있다. 형형색색의 조명과 조형물은 거리를 점령하고 들뜬 연말 분위기를 증명했다.

반면 ‘도심 속의 섬’이 돼 버린 공간은 쉽게 이방인의 방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건물들이 좁게 맞붙어 있는 골목길은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냉기가 가득하다. 인파들의 북적거림 대신에 짙은 습기가 묻어 있는 차가운 바람이 엄습한다. 드문드문 사람들도 목격된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꾸부정한 허리를 치켜세우며 발걸음을 옮긴다.

양 손에는 파지로 가득하다. 오른쪽 눈 밑에 원인 모를 멍자욱이 선명한 중년의 남자는 눈을 치켜뜨고 퉁명스럽게 쏘아본다. 흡사 망루 속의 척후병처럼 여인숙 3층 창문에서도 빠끔히 목을 내밀고 이방인을 내려 본다. 타인에 대한 의심이다. 사회에 대한 불신이다.

거리에 즐비한 여인숙, 모텔, 여관에 명시된 ‘월세 있음’이라는 문구가 여기가 쪽방촌임을 대변한다.

월세방 2층에는 각박한 삶의 편린이 서려있는 서너 평 남짓한 방들이 빼곡하다. 방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것처럼 정돈되지 않는 모양새이다. 주인으로부터 소외된 서너 개의 동전이 순간적으로 강한 빛을 발한다.

그 곳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매몰되고 없다.

투박한 쇳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린다. 초췌한 차림의 한 남자가 경계하는 듯 한 눈빛을 표출한다. 짧게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역시나 완강히 거부한다.

인근 지하상가에서 만난 엄모 씨(68)는 “이 곳은 10~15만 원 정도의 월세방이 대부분이다”면서 “중구에서 실시하는 노인일자리 창출사업 15만 원으로 월세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충남방적에 근무하다 2002년 퇴직하고 일자리를 찾지 못해 이런 꼴이 됐다”며 “노령연금으로 받는 돈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전시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쪽방은 통상 3평 미만의 주거시설을 의미한다”며 “대부분이 기초수급대상자로 주거비 10만 원, 생계비 15만 원 정도로 삶을 유지하고 있는 취약계층이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도 극소수에 불과하다”면서 “이들을 위한 사회적 관심과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희철 기자 seeker@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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