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에 의해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의 해상경계가 확정된 후 100여 년이 다 됐지만, 아직까지 잘못된 도계(道界)를 바로잡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수치(羞恥)라는 지적이다.

조업구역은 물론 해태양식장 등 어장 문제, 항만 건설과 관련한 매립지 문제 등으로 인접 시·도, 또는 기초자치단체 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나 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천지역 어민들이 잘못된 해상경계로 인해 사실상 서천 앞바다에서 조업하다 적발되면 벌금을 내고 조업을 정지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는 문제점을 알면서도 한세기 동안 이를 방치한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는 비난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 같은 해상경계로 인한 분쟁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의 치지도외(置之度外)는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행정편의주의적인 탁상행정에 다름아니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장항읍 원수어촌계가 지난 1981년 12월 ‘공동조업이라도 가능하게 해 달라’고 건의했지만 전북 측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결렬됐고, 1987년 2월 서천어민들이 ‘불합리한 해상경계를 시정해 달라’고 거듭 청와대에 건의했지만 이마저도 묵살됐다.

1989년 서천군, 보령시(당시 대천시), 군산시와의 어업면허 분쟁에서도 정부가 내놓은 처방은 ‘상호 이해를 조정해 해결하라’는 것이었고, 1995년 5월 보령 어민회에서 당시 건설교통부와 수로국, 수산청, 내무부 등 관계 부처 및 기관에 해상경계 조정을 요청하자, ‘경계선은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인식돼 왔기 때문에 관습법상 지위를 누린다’는 전북 측의 주장에 밀려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1998년 4월 보령시 어업인이 군산시 수역에서 조업 중 도계를 넘어 불법어업으로 검거돼 기소된 후, 이에 불복소송을 제기하자, 전주지법 군산지원은 ‘해상경계 규정이 없으므로 무죄’라고 판결했지만 2000년 2월 전주지법은 ‘관습상의 경계’를 인정해 유죄판결(벌금 70만 원)을 내린 바 있다.

이처럼 전북 쪽에 지나치게 편중된 도계로 인한 분쟁의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는 데도 정부는 서천 어민들의 ‘100년 한(恨)’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해상경계 조정에 관한 한,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주무부처가 없다보니 해상경계에 대한 부처별 견해도 제각각이다. 국방부는 ‘해상경계는 관할권의 표시가 아니다’는 입장이고, 행정안전부와 해도(海圖)를 만드는 국토지리정보원도 ‘해상경계 표시는 도서의 소속을 표시하기 위한 기호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법제처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상 해상경계를 근거로 도계를 인정하고 있고, 국토해양부도 국토지리정보원이 고시한 경계선을 인정하고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해상경계를 단순한 기호로 보고 있는 데도, 법제처와 국토해양부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를 앞세워 도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치욕의 상징이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일제에 의해 훼손된 흥례문을 복원하는 등 일제 잔재를 없애기 위한 몸부림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작 일본인이 만든 해상도계는 100년을 주야장천 지켜내는 웃지못할 육욕(戮辱)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영우 서천군 해양수산과 수산정책담당은 “해상도계 조정은 단순히 충남과 전북의 싸움이 아니다. 작은 영해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며 생존싸움을 벌이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다”라며 “무엇보다 일제의 식량수탈 정책에 의해 잘못 그어진 도계를 바로잡는 것은 일제 잔재를 떨치고, 대한민국의 자존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고 조속한 경계조정을 촉구했다.

나인문 기자 nanews@cctoday.co.kr

서천=노왕철 기자 no850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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