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호 당선자는 충남 논산시 성동면 병촌리에서 김주옥·정순애 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군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으나 부농이었던 관계로 일찍 공직에서 물러났고 모친은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취직이 가능한 강경상고로 진학한 그는 이후 자신의 진로를 고심한 끝에 어머니의 뒤를 잇고자 공주교육대학으로 진학했다.
졸업 후 임용에 실패해 서울에서 1년 동안 옷을 파는 ‘외도’를 하기도 했던 김 당선자는 대전으로 돌아와 숭전대(현 한남대) 국어교육과(야간)에 편입했다.
교사로 부임한 후에도 배움에 대한 열정이 그치지 않았던 그는 1984년 퇴직금 670만 원 만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미국 웨스턴 일리노이 주립대와 아이오와 대학에서 교육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 당선자는 1994년부터 공주교대 교수로 재직하며 아동교육의 실상을 파악하고 한국교육의 미래를 그렸다.
평소 관심사였던 교육행정을 펼치기 위해 2002년 대전시교육위원으로 입문한 그는 폭넓은 교육에 대한 지식을 현장에 접목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4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김 당선자는 낙마의 아픔을 겪었으나 2006년 마침내 대전 교육계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그는 2년 4개월 동안 교육감을 역임하며 대전교육을 새롭게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임 당시 1410억 원에 달하던 대전시교육청의 부채를 전액 상환했고, 지방혁신 종합평가에서 전 부문 우수교육청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끌었다.
그의 임기 동안 학생들의 학력도 전국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졌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들을 바탕으로 대전시민들은 그에게 다시 한 번 교육감의 자리를 안겨줬다. 진창현 기자 jch8010@cctoday.co.kr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취직이 가능한 강경상고로 진학한 그는 이후 자신의 진로를 고심한 끝에 어머니의 뒤를 잇고자 공주교육대학으로 진학했다.
졸업 후 임용에 실패해 서울에서 1년 동안 옷을 파는 ‘외도’를 하기도 했던 김 당선자는 대전으로 돌아와 숭전대(현 한남대) 국어교육과(야간)에 편입했다.
교사로 부임한 후에도 배움에 대한 열정이 그치지 않았던 그는 1984년 퇴직금 670만 원 만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미국 웨스턴 일리노이 주립대와 아이오와 대학에서 교육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 당선자는 1994년부터 공주교대 교수로 재직하며 아동교육의 실상을 파악하고 한국교육의 미래를 그렸다.
평소 관심사였던 교육행정을 펼치기 위해 2002년 대전시교육위원으로 입문한 그는 폭넓은 교육에 대한 지식을 현장에 접목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4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김 당선자는 낙마의 아픔을 겪었으나 2006년 마침내 대전 교육계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그는 2년 4개월 동안 교육감을 역임하며 대전교육을 새롭게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임 당시 1410억 원에 달하던 대전시교육청의 부채를 전액 상환했고, 지방혁신 종합평가에서 전 부문 우수교육청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끌었다.
그의 임기 동안 학생들의 학력도 전국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졌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들을 바탕으로 대전시민들은 그에게 다시 한 번 교육감의 자리를 안겨줬다. 진창현 기자 jch8010@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