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촌공사(사장 홍문표) 당진지사가 관리하는 10개의 저수지는 지력이 우수한 ‘축복의 땅’ 당진평야를 견실하게 유지하고 있다.

실제 당진은 전국 지자체 가운데 지난 1997년, 1998년, 2000년 단보당(300평) 쌀 생산량 수위를 차지하며 우수한 지력을 입증했다.

송악읍 가교리에 위치한 송악저수지는 6·25 동란 중인 1951년 주민들의 출연으로 건립이 시작돼 1958년 완공됐다. 이후 줄곧 인근 지역에 생명수를 공급하는 젖줄로써 사명을 다하고 있다. 특히 송악읍은 예부터 중국으로 통하는 해상교통의 요지로 각광받았고 근대에는 경인지방으로 가는 주요 길목에 위치해 해상교통이 편리했다. 최근에는 서해안고속도로, 해안산업도로 등 육상교통의 발달로 당진지역의 관문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야산 자락인 아미산에서 발원한 송악지는 주민들에게는 가교 저수지라는 이름이 더욱 익숙하다.

송악지의 유역면적은 254㏊, 수혜면적은 161㏊ 정도로 비교적 작은 규모의 저수지이다. 총저수량은 488㎥이며 지근거리에 자리한 가교리, 방계리, 반촌리, 본당리 등 4개리 40여 가구에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높이 10.40m, 길이 166m의 다소 허름한 외형의 송악지의 제체(제방)는 반세기를 온몸으로 버텨왔다. 제체에 훈장마냥 새겨진 생채기는 치열한 지난날의 기억이다.

나트막한 지형에 다소곳하게 내려앉은 형세인 송악저수지는 어릴 적 시골저수지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규모의 웅장함과 수려한 경관을 뽐내지는 않지만 수수한 매력이 백미이다. 흡사 쇠락한 절터에서 느끼는 애잔함과 쓸쓸함이 적절하게 혼합돼 찾는 이의 발길을 애써 부여잡고 있는 것만 같다.

지난 26일 송악지를 찾았을 때 바람은 미친듯이 대지를 유린했다. 흩날리는 머리칼 사이로 저수지는 함구한 말을 토해내듯 거세게 이방인을 몰아세웠다.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 송악지가 대노한 듯 했다. 날카로운 가을바람으로 잉태된 백색 물비늘은 쏜살같이 수면을 갈랐다. 마치 경쟁이나 하는 것처럼 짧은 삶을 마쳤다. 마지막 섬광은 망막에 그대로 찌릿한 감각을 전했다. 물비늘에 한 사람의 인생이 홀연히 겹쳐졌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했다. 동시에 대통령의 운명이 다한 날이기도 하다. 시간은 그대로였지만 삶은 거침없었다.

송악지도 이날을 기점으로 주 수원공의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삽교천 농업종합개발사업을 통해 당진은 풍부한 수자원을 확보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늙은 저수지는 보조 수원공 역할을 자임하며 사력을 다하고 있다.

송악지는 환경등급 기준 4급수로 농업용수 공급에는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당진지사는 송악지의 수질환경 개선을 위해 수생식물 식재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실제 송악지 수면에는 부유하는 식재식물을 확인할 수 있다. 수생식물 재배는 수면에서 수생식물이 성장할 수 있도록 조성된 부유식 재배장치로 수질개선, 생태계 복원, 경관창출 등 일석삼조 효과를 창출하는 기술이다.

이와 함께 습지 생태계 복원효과와 수질개선 효과를 수면 위에서 실현하고 또 하나의 녹색공간으로 수서 동식물의 서식처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당진지사는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총 사업비 1790만 원을 투입해 220㎡ 면적에 수생식물을 식재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향후 호소 내에 산소공급 및 미생물 증식을 통한 유기물의 분해 촉진을 통한 수질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수생식물의 영양물질 분해 및 흡착기능으로 질소, 인, SS(부유물질) 제거로 녹조를 예방하는 결과도 예상된다. 송악지 인근에는 다양한 유·무형의 볼거리들이 방문객들을 회유한다.

특히 기지시리(機池市里)에 전승돼 내려온 기지시 줄다리기는 1982년 중요무형문화제 75호로 지정됐다. 특히 줄의 길이가 200m에 달해 송악지의 제체보다도 긴 규모이다.

기지시 줄다리기는 윤년이 드는 음력 3월 초에 시행된다. 기지시리에서는 줄다리기를 이틀 앞두고 마을 동편에 있는 국수봉의 국수정에 재단을 설치해 재난을 몰아내고 풍년과 번성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낸다.

다음날에는 농악대가 방방곡곡에서 모여들어 농악을 겨루고 농우(農牛)를 시상한다. 줄다리기는 국도를 경계로 남쪽을 수상(水上), 북쪽을 수하(水下)로 지역을 구분해 편을 가르고 수천 명이 자웅을 겨룬다.

수상이 이기면 만사가 태평하고 수하가 이기면 풍년이 든다는 전설이 있으니 선조들의 유쾌한 지혜도 실감할 수 있다. 또한 큰 줄에 달린 새끼줄을 달여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 행사가 끝나면 순식간에 동이 난다.

또한 한국 농촌소설의 정수인 심훈의 ‘상록수’가 태어난 곳으로 소설가이자 영화인인 심훈(沈熏)의 문학 산실(産室)인 필경사(筆耕舍)도 관람객들의 발길을 돌려세운다. 필경사는 심훈 선생이 낙향해 직접 설계하고 건설한 집으로, 필경사란 옥호는 1930년 ‘그날이 오면’이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내려다 일제의 검열로 실패했지만, 이 시집 중 필경이란 시에서 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진(唐津)이라는 지명에서 유추할 수 있는 한진포구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포구는 삼국시대에 당나라와 해상무역을 한 항구이다. 1960년대까지 인천을 오가는 여객선이 운영됐다. 최근에는 서해대교가 연결돼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글=서희철 기자 seeker@cctoday.co.kr

사진= 우희철 기자 photo291@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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