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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두루 행복하는 것이며, 미덕 중에서 최고의 미덕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기부나 나눔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직접 실행에 옮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떻게 나누고 누구를 돕느냐가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수년째 어려운 학생과 이웃을 돕는 기부천사 두리유통 최영환(46) 대표 역시 항상 이런 고민을 한다.
관공서 추천을 받아 연말이나 명절 때면 복지시설에 후원금과 물품을 전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지만 최 대표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직 우리 주위에는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어려운 이웃이 많다는 게 최 대표의 생각이다.
이 때문에 그는 급식비가 없어 밥을 굶는 시골 초등학교 아이들이나 집안 사정이 어려워 운동을 포기해야 하는 선수들을 직접 찾아 돕는다.
최 대표는 "처음에는 누구를 어떻게 도와야할지 몰라 복지시설 등을 찾아 기부를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시설 외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며 "이런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데 밖으로 알려지지 않아 소외받는 것은 조금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유를 밝혔다.
말 그대로 '남몰래 기부'를 실천하는 최 대표의 이런 모습에는 남다르지 않은 성장배경에 있다.
지금은 100억 원대 매출을 자랑하는 대전에서 내로라하는 유통업체를 운영하지만 어린 시절 그는 말 그대로 노는 아이였다.
충남 부여출신인 최 대표는 3살이 갓 넘은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들마저 병으로 잃었다.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과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사실 때문에 적잖은 놀림을 받은 것이 결국 사춘기 때 폭발했다.
집을 나온 그는 서울 등에서 방황의 시간을 보냈고, 결국 남들보다 2년 늦게 중학교를 졸업해야 했다.
방황의 시간 끝에 마음을 다시 잡은 최 대표는 육상 특기생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당시 열악한 환경 탓에 연습 중 부상은 예사였고, 선배들의 가혹행위 역시 참기 힘든 부분이었다.
3학년 때 운동을 그만둔 후 학교를 졸업한 최 대표는 꿈을 잃고, 또다시 긴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군대까지 다녀왔지만 딱히 배운 기술도 없고, 앞길이 막막한 최 대표 인생에 기회가 찾아왔다.
고등학교 시절 자주 가던 만두집 사장 부부가 자취방에서 일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최 대표에게 딱 한 달만 시장에서 일해보라고 제안을 했다.
최 대표는 "사실 만두집 사장 부부에게 딱히 잘한 것도 없는데 아들처럼 잘해주셨다. 집에서 노는 놈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지인 통해 일자리를 구해줬다"며 "그분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장본인"이라고 말했다.
보수도 적고 일도 힘들 것 같아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수차례에 걸친 사장 부부의 권유에 못 이겨 동구 삼성시장 도매슈퍼에서 일하게 된 그때가 최 대표가 유통업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이른 새벽시간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고된 일상에 여러 번 그만둘까도 고민했지만 여기 아니면 받아 줄 곳이 없다는 생각에 참고 견뎠다.
6년간 남보다 부지런히 일했고, 능력도 인정을 받은 탓에 대기업 간부 수준의 월급을 받았던 그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도매슈퍼를 다른 사람이 인수를 하게 됐고, 결국 1994년 일을 그만뒀다.
하지만 3개월 남짓 지났을까? 최 대표는 삼성시장에서 수산물을 도매하던 박 사장의 연락을 받고 나간 자리에서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됐다.
평소 그의 부지런한 면면을 지켜봐온 박 사장이 돈을 빌려줄 테니 사업을 해보라는 권유를 한 것.
최 대표는 "사실 시장에서 인사만 주고받는 나누는 사이였는데 갑자기 사업자금을 빌려준다는 말에 놀랐다"며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점포에 물건을 지키느라 차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젊은 놈이 기특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사실 재미로 차에서 생활한 건데…"라고 웃음을 지었다.
다소 황당했지만 이게 마지막 기회다 싶어 제안을 수락한 최 대표는 사업을 일구기 위해 또다시 이를 악물었다.
박 사장의 도움으로 3000만 원을 손에 쥔 최 대표는 오정동에 작은 창고겸 점포를 임대하고, 전국 각지를 돌며 물건을 구해다 팔기 시작했다.
어디가 됐던 단돈 100원이라도 싸면 직접 달려가 물건을 실어왔고, 이렇게 한푼 두푼 모아 사업을 늘려간 것이 지금의 대전 대표 유통회사로 성장했다.
이런 최 대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업 철학은 약속과 신용, 그리고 기회다.
유통업의 특성상 외상거래도 적지 않을 법한데 최 대표는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외상거래는 거의 하지 않는다. 또 약속을 하면 설령 물건 값이 비싸더라도 그 사람과 거래를 한다.
특히 어렵던 시절 자신을 믿고 기회를 줬던 사람들처럼 도움이 필요한 지인이나 사업 파트너에게는 여력이 되는 한 반드시 돕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이처럼 수년째 끊임없이 이어지는 김 대표의 기부 역시 그의 경영 철학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김 대표가 나눔의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은 13년 전 한 신문 기사를 읽은 뒤부터다.
충남 온양의 한 중학생 수영선수가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한다는 기사를 보고, 어릴 적 방황하던 때 도움을 줬던 은인들의 생각이 들어 당시 100만 원을 수술비로 보냈다.
또 이 학생이 힘든 가정환경에 어렵게 선수생활을 한다는 것을 알고, 일명 '키다리아저씨'처럼 대학 졸업 후 정착할 때까지 매달 10만 원씩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한 김 대표의 나눔은 이제 일상이 된지 오래다.
몇 년 전부터 매달 30만 원씩 골프선수의 꿈을 키우는 학생 후원을 시작했고, 부여의 한 중학교 결식학생들에게 매달 급식비를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1000원에 따뜻한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기운차림'에 매달 적지 않은 물품을 후원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짧지만 그동안의 삶을 돌이켜보면 내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다"이라며 "우리 삶이 내 힘만으로 살아갈 수 없듯이 작지만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것만큼 행복하고 보람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근 기사를 보면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에 비하면 내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나눔과 기부 다 좋은 얘기지만 실제 실행에 옮기기는 것이 쉽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이나 마음이 아니라 작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조재근 기자 jack333@cctoday.co.kr
사진=김호열 기자 kimhy@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