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12시 20분 대전 서구 둔산동 갤러리아 타임월드 10층 공연장은 아이들의 함성소리로 가득찼다.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왕자와 거지’ 뮤지컬 배우들의 손동작과 춤·노래, 이외에도 형용색색의 조명과 장면장면마다 바뀌는 무대배경 등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모든것을 이 공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50여분 동안의 공연이 끝나고 퇴장을 할 때도 아이들은 왕자와 거지 이야기로 한껏 고무된 표정이다.

특히 공연 후 배우들과의 포토타임과 배우들과의 짧은 이야기 시간은 아이들을 더욱 동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듯 보였다.

“난 커서 왕자가 되야지, 절대로 거지는 되지 말자 우리…” 4~5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주변친구들에게 이 같은 말을 던지며 다음공연에 또 보러오겠다는 말을 되내이고 있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 뮤지컬 배우들은 다음 공연을 위해 다시 분주하게 움직인다.

한켠에 이들을 지켜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 한분이 눈에 들어온다.

가족뮤지컬 극단 레오 대표이자 총감독인 박용진 씨.

단원들의 연기지도 뿐만 아니라 무대 디자인, 조명까지 못하는게 없는 만능 엔터테이너.

이 같은 엔터테이너가 되기까지 박 감독의 이력은 화려하기 보다는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는 말로 함축된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이들의 아름다운 꿈을 키워주는 뮤지컬 대표가 되기 까지 그의 삶의 한 단면을 살펴보자.

   
박 감독이 뮤지컬의 모태가 되는 연극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방송연예과를 재학하고 있던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다른 끼와 재능을 보였던 박 감독은 졸업과 동시에 1985년 성인극을 위주로 하는 대구 동화백화점 극단에 취업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대구 동화백화점 극단은 지방에서는 유일한 민간 극단으로 박 감독은 멋진 연극배우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게 된다.

연기 뿐만 아니라 조명과 음향, 지금의 감독이 되기까지 자양분을 쌓는 기회를 가지며 남들과 두들어진 끼와 재능을 발산한다. 끼와 재능은 그 당시에 큰 인기를 누리던 마당극으로까지 번져가며 매력발산에 열을 올린다.

박 감독은 이 때 배우로 처음 데뷔하며 관객들의 혼을 다 빼놓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그 당시 마당극은 박 감독의 전부이자 꿈을 펼칠 수 있는 근원이었던 셈이다.

1986년 마당극이 아닌 뮤지컬을 처음으로 접한 박 감독은 큰 감동과 전율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마당극에서 발견하지 못한 매력을 뮤지컬에서 발견한 박 감독은 8~9시간 되는 연습 강행군에 녹초가 되도 행복한 시간 이었다.

하지만 박 감독에도 고민이 있었는데 다름아닌 배고픈 생활이 지속되는 악조건 속에서 집안의 반대가 그것이다.

1평 남짓한 방에서 생활하고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는 박 감독의 생활을 잘 알았던 부모님과 형제들의 반대가 너무 컸다.

박 감독은 부모·형제가 박수쳐줄 그날이 분명이 올것을 알기에 고삐를 늦추지 않고 1987년 부산에 다방을 개조해 소규모 공연장을 만들어 연기에 대한 열정을 냈다.

   
성인들 대상으로 한 공연에서 이렇다할 반응이 없자 크게 낙담한 박 감독은 하루에 1끼, 심지어 이틀에 1끼를 떼울정도로 심한 배고픔을 느꼈고 ‘꿈을 포기해야 하나’라는 기로에 서게 된다.

하지만 박 감독은 밤에는 공연 포스터를 붙이고 낮에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형극을 처음으로 접하며 그의 활동영역을 넓혀 나갔다.

결국 박 감독은 1987년 12월 군에 들어가게 된다.

군(문선대)에 입대해서도 박 감독의 끼와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인형극은 활동영역을 넓히는 수단으로만 작용했을 뿐 현재 하고 있는 어린이 뮤지컬의 시발이 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군을 제대한 뒤 박 감독은 배고픈 생활을 더이상 할 자신이 없었다.

다시는 연극무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다른일을 알아보고 있을 당시, 여전히 그를 찾았고 심지어 밤무대에서도 고액의 금액을 제시하며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카페트 판매 영업사원 등 다양한 직종의 일을 해봤지만 연극을 했었을 당시의 희열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한 동안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을 1990년, 대구 MBC에서 어린이 관련 프로인 ‘어린이 나라’ 뚱돌이 역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다.
   
▲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의 웃음과 함성은 멈추지 않았다.

성인극은 혼신의 연기를 펼쳐도 반응이 늦게 오는 반면 어린이들은 몸짓, 손짓 하나 표정하나에도 큰 반응을 보였던 군대 이전 시절 기억들을 떠올리며 결심을 굳혔다.

박 감독의 생각은 그대로 맞아 떨어져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웃음도 안겨주는 어린이 극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3년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1993년 대구백화점에 어린이 극단 감독을 하며 어린이 뮤지컬에 관한 모든 것을 익히고 배웠다.

1997년 갤러리아 타임월드 오픈 기념으로 초청된 박 감독은 대구에서의 큰 반응과는 달리 어린이 뮤지컬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사람모으기도 힘들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1달 동안의 갤러리아 타임월드와의 계약이 끝나고 대구 극단이 돌아가는 그 때 박 감독은 공연문화 불모지에 깃발을 꼽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다.

단원들을 모집하고 일일히 어린이들이 많은 어린이집과 유치원들을 돌며 어린이 뮤지컬에 대한 홍보활동을 낮밤 가리지 않고 진행했다.
   
▲ 극단 레오 박용진 대표와 단원들.

“진짜 사람이 나오냐?”,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냐?”는 등 어린이 뮤지컬이 아직은 생소하다는 반응들 일색이었다.

한 두명씩 공연장을 찾게 되고 일반 큰 공연장에서만 볼 수 있는 어린이 뮤지컬이 저렴한 가격으로 소공연장에서도 볼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기까지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어린이 뮤지컬을 대전에 정착시키기 까지 박 감독은 무엇보다 우수한 단원을 만드는 것에 1순위를 뒀다.

어린이 뮤지컬 문화생들을 모집해 교육을 시켰으며 이 곳을 통해 길러진 단원들을 업계 최고대우로 스카우트했다.

배고팠던 자신의 과거가 이들에게도 전가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박 감독은 배우 하나하나를 자식처럼 생각했다.

이렇게 가족뮤지컬극단 레오에 입단한 단원들의 수가 늘어 안정된 배우수를 갖추다 보니 다양한 공연들과 수준높은 공연들을 기획할 수 있었고 공연장을 찾는 부모님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게 됐다.

2002년 이후 공연장은 매회 공연마다 매진사례를 이루는 일이 많아졌고 타 지역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공연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들어온 공연제의가 이제는 울산, 구미, 광주, 인천 등 전국 5개곳에서 상설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 단원수만 해도 80명으로 업계에서 최고수준을 자랑하며 지방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갤러리아 타임월드 10층 공연장에서는 한달에 1작품씩 선을 보이고 있는데 세계명작동화(백설공주, 피터팬, 인어공주 등), 전래동화(콩쥐팥쥐, 혹부리영감 등), 창작동화(내친구 도깨비 등) 등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연들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도 더 나은 공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공연을 위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는 박 감독은 큰 포부를 내비쳤다.

한국 어린이 뮤지컬의 외국 수출과 청소년 대상 뮤지컬 제작 등이다.

박 감독은 “한국 어린이들 뿐만 아닌 외국 아이들에게도 동심을 자극하며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뮤지컬을 선물하고 싶다”며 “이와함께 청소년들이 볼 수 있는 뮤지컬을 제작해 모든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문화혜택을 누리게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고 말했다. 글=전홍표 기자 dream7@cctoday.co.kr

사진=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Posted by 충투 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