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박영애 다문화 보태미 회장이 한국에 시집온지 1년 남짓한 필리핀 새댁 크리스티의 집을 방문해 한글교육을 하고 있다. 김호열 기자 kimhy@cctoday.co.kr  
 
"한국에서는 돌잡이 물건으로 무엇을 놓을까요?"

한국에 시집온지 1년 남짓한 필리핀 새댁 크리스티(27) 씨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지도교사 말에 서툰 발음이지만 또박또박 따라 읽었다.

태어난지 갓 100일된 아들 민창이가 옆에서 놀아달라 보챘지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다.

필리핀 새댁에게 1년째 한글을 가르치는 다문화보태미 박영애(50) 회장은 "처음 만났을 때 말 한마디 못하던 크리스티가 이젠 책도 읽고, 긴 편지도 쓸 만큼 한국 사람이 다됐다"고 대견해 했다. 다문화가정이나 외국인 이주여성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박 회장은 벌써 2년째 한글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비록 얼굴과 피부색, 언어는 다르지만 박 회장에게 이주여성들은 교육생을 떠나 가족이나 다름없다.

박 회장에게 한글과 우리 문화를 배우는 크리스티 역시 딸 같은 존재다. 지난해 6월 한국에 온 크리스티와 첫 연을 맺은 박 회장은 그해 11월 치른 전통혼례에서 크리스티의 친정어머니 역할까지 했다.

박 회장은 "아직 미혼인 딸이 있어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멀리 타국에서 혼자 온 크리스티가 가족 하나 없이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이들의 인연을 계속돼 6개월간 한글 교육으로 예정됐던 것이 1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박 회장은 "크리스티를 볼 때마다 내 딸을 시집보낸 것 같아 자꾸 마음이 쓰인다. 서툰 한국말과 다른 문화로 가족들 사이 문제나 생기지 않을까 항상 걱정된다"며 "처음 우리말을 배울 때 어려워하던 크리스티가 이제는 얼마 전 출산한 아들을 위해 열심히 배우는 모습을 보면 눈물날 때가 많다"고 심정을 전했다.

박 회장이 활동하는 다문화보태미는 2008년 동구청 평생학습센터에서 실시했던 '다문화가정방문교육지도사' 교육을 수료한 수강생들의 모임이다.

'다문화가정에 보탬을 주자'는 의미에서 시작된 이 모임은 현재 22명의 회원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여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 문화까지 알려 정착을 돕는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 발 더 나가 미술치료, 예절교육, 구연동화, 요리교실 등 다문화가정에 대한 폭넓은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1997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 수상과 함께 등단한 박 회장은 2006년 수필집 '아내의 책상'을 발간하는 등 문학가로도 활동 중이다.

수필가인 박 회장이 처음부터 이주여성을 위한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간농양으로 쓰러진 남편이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다 극적으로 완치되면서 누군가를 위해 사회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국문학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한글교육 보조강사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한국어지도사 과정까지 수료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다.

박 회장은 "최근 이주여성들에 대한 인권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모든 것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며 "이해의 기본은 말이고, 말의 기본은 한글이다. 한글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주여성이 마음 놓고 배울 수 있는 가족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재근 기자 jack333@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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