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 월드컵 열기가 무르익을 무렵, 치킨집과 피자집의 매출 증가와 함께 이들 음식의 감초격인 맥주 소비의 증가가 화제가 된 바 있다.
어느새 맥주는 전통 술인 막걸리와 소주를 제치고 가장 친숙한 대중의 술이 됐다. ‘맥주, 세상을 들이켜다’는 정통 맥주의 고장 독일 출신 야콥 블루메가 전세계인이 함께 마시는 술이 된 맥주의 모든 것을 다룬 책이다.
맥주는 유사 이래 세계 각지에서 노동자들의 급료로 쓰였으며 중세 수도원의 생활약식이자 중요한 자금줄이기도 했다.
근대의 맥주는 노동자와 인텔리 간 소통의 장을 만들었고 이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 위정자들은 금주령으로 맞서기도 했다.
로저 룩셈부르크가 반전 연설을 한 곳이 뮌휀 킨들홀이라는 맥주집이었고 나치스가 창당대회를 연 곳 역시 슈테르네커브로이라는 맥주집이었다.
뿐만 아니라 독재자 히틀러 역시 이곳 슈테르네커브로이에서 최초의 정치 연설을 하게 된다.
저자 야콥 블루메가 이 책을 통해 “맥주는 사회와 정치를 떠받드는 강력한 요소”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공동체의 술’ 맥주
무엇보다 맥주는 공동체의 술이며, 연대의 술이다.
도수가 그리 높지 않은 맥주는 쉽게 취하지 않으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 의식을 치를 수 있는 적절한 술인 동시에 소통의 장을 마련해 공동체의 기초를 튼튼히하는 가장 효과적이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맥주는 인류 역사 속에서 주연은 아닐지 몰라도 주연의 손에 늘 들려있던 중요한 조연이었다. ‘맥주(beer)’는 독일어로 ‘bier’라는 북부 지방 게르만어 ‘bere(보리)’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즉, 보리로 만든 음료라는 뜻이다.
그러나 와인이 ‘포도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과일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통칭하는 것처럼 맥주 역시 보리뿐만 아니라 귀리 등 각종 곡물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아우른다.
◆맥주와 인간
과거 남부 유럽 수도원은 와인을 빚었지만 중부 유럽 수도원은 맥주를 빚었다. 맥주를 만드는 기술은 6세기부터 수도원의 주도 아래 예술의 경지까지 올라섰는데 강력한 후원금과 풍부한 지식, 그리고 시간 덕분이었다.
수도사들은 맥주에 효모를 첨가하는 기법 등 고급 양조기술뿐만 아니라 홉을 사용하는 법도 처음 개발했다. 우리가 현재 마시고 있는 맥주는 당시 수도사들이 개발한 방법에 의한 만들어진 것들이다.
수도원들은 거대하고 치밀한 생산시설을 바탕으로 다양한 맥주를 생산해 큰 돈을 벌었으며 종국에는 직접 술집을 운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맥주 제조에 여성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든 게르만족이든 언제나 맥주를 책임진 것은 여성이었다.
여성은 자신들이 빚은 맥주를 이웃 아낙들과 떠들썩한 수다와 함께 취할 때까지 마셔대곤 했다.
일부 여성이 경영하는 맥주집이 성업을 이루자 중세 마녀 사냥꾼들은 맥주집 여주인을 마녀로 몰아 화형을 시키기도 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중세시대 극심한 맥주 양조 경쟁은 맥주에 온갖 첨가물을 섞어넣는 실험을 낳았고 소 쓸개나 뱀 껍질, 삶은 달걀, 심지어 죽은 사람의 손가락까지 첨가하는 비뚤어진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는 점이다.
◆맥주와 정치
언제 어디서나 맥주를 마셔왔던 독일 프롤레타리아들은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매일 14~16시간 노동을 강요받게 된 후 맥주 대신 화주(독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자유시간이 짧으니 그만큼 빨리 취하는 화주가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고 기업주는 이를 적절히 이용했다.
일을 마친 후 항상 술에 절어있던 노동자들은 불평할 힘도, 정치에 관심을 가질 일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독주는 알콜중독이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생산성 저하와 산업재해가 날로 심각해져갔다.
결국 기업들은 독주 대신 다시 맥주를 권하기 시작했고 명맥이 끊길뻔 했던 맥주는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다시 생명을 얻게 된다. 이즈음 독일 사민당은 당원과 동지들에게 귀족과 토호들의 배를 불리는 증류주를 마시지 말자고 호소했다.
이들의 증류주 불매운동은 제국에 대한 반기로 받아들여지면서 좌우진영의 첨예한 대립을 부추겼고 결국 술 자체가 적대시 됐고 사회민주주의 진영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 금주령이 선포되기도 했다.
특히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산업화의 결과로 빚어진 모든 부정적 현상, 즉 범죄와 빈곤 등의 주범으로 술을 지목해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후 20세기에 들어 금주운동은 정치적이고 무정부적인 노동자 세력을 뿌리 뽑고 자본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술, 혹은 맥주는 인류 역사 속에서 정치의 강력한 요소였다.
김대환 기자 top7367@cctoday.co.kr
어느새 맥주는 전통 술인 막걸리와 소주를 제치고 가장 친숙한 대중의 술이 됐다. ‘맥주, 세상을 들이켜다’는 정통 맥주의 고장 독일 출신 야콥 블루메가 전세계인이 함께 마시는 술이 된 맥주의 모든 것을 다룬 책이다.
맥주는 유사 이래 세계 각지에서 노동자들의 급료로 쓰였으며 중세 수도원의 생활약식이자 중요한 자금줄이기도 했다.
근대의 맥주는 노동자와 인텔리 간 소통의 장을 만들었고 이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 위정자들은 금주령으로 맞서기도 했다.
로저 룩셈부르크가 반전 연설을 한 곳이 뮌휀 킨들홀이라는 맥주집이었고 나치스가 창당대회를 연 곳 역시 슈테르네커브로이라는 맥주집이었다.
뿐만 아니라 독재자 히틀러 역시 이곳 슈테르네커브로이에서 최초의 정치 연설을 하게 된다.
저자 야콥 블루메가 이 책을 통해 “맥주는 사회와 정치를 떠받드는 강력한 요소”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공동체의 술’ 맥주
무엇보다 맥주는 공동체의 술이며, 연대의 술이다.
도수가 그리 높지 않은 맥주는 쉽게 취하지 않으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 의식을 치를 수 있는 적절한 술인 동시에 소통의 장을 마련해 공동체의 기초를 튼튼히하는 가장 효과적이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맥주는 인류 역사 속에서 주연은 아닐지 몰라도 주연의 손에 늘 들려있던 중요한 조연이었다. ‘맥주(beer)’는 독일어로 ‘bier’라는 북부 지방 게르만어 ‘bere(보리)’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즉, 보리로 만든 음료라는 뜻이다.
그러나 와인이 ‘포도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과일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통칭하는 것처럼 맥주 역시 보리뿐만 아니라 귀리 등 각종 곡물을 발효시켜 만든 술을 아우른다.
◆맥주와 인간
과거 남부 유럽 수도원은 와인을 빚었지만 중부 유럽 수도원은 맥주를 빚었다. 맥주를 만드는 기술은 6세기부터 수도원의 주도 아래 예술의 경지까지 올라섰는데 강력한 후원금과 풍부한 지식, 그리고 시간 덕분이었다.
수도사들은 맥주에 효모를 첨가하는 기법 등 고급 양조기술뿐만 아니라 홉을 사용하는 법도 처음 개발했다. 우리가 현재 마시고 있는 맥주는 당시 수도사들이 개발한 방법에 의한 만들어진 것들이다.
수도원들은 거대하고 치밀한 생산시설을 바탕으로 다양한 맥주를 생산해 큰 돈을 벌었으며 종국에는 직접 술집을 운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맥주 제조에 여성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든 게르만족이든 언제나 맥주를 책임진 것은 여성이었다.
여성은 자신들이 빚은 맥주를 이웃 아낙들과 떠들썩한 수다와 함께 취할 때까지 마셔대곤 했다.
일부 여성이 경영하는 맥주집이 성업을 이루자 중세 마녀 사냥꾼들은 맥주집 여주인을 마녀로 몰아 화형을 시키기도 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중세시대 극심한 맥주 양조 경쟁은 맥주에 온갖 첨가물을 섞어넣는 실험을 낳았고 소 쓸개나 뱀 껍질, 삶은 달걀, 심지어 죽은 사람의 손가락까지 첨가하는 비뚤어진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는 점이다.
◆맥주와 정치
언제 어디서나 맥주를 마셔왔던 독일 프롤레타리아들은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매일 14~16시간 노동을 강요받게 된 후 맥주 대신 화주(독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자유시간이 짧으니 그만큼 빨리 취하는 화주가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고 기업주는 이를 적절히 이용했다.
일을 마친 후 항상 술에 절어있던 노동자들은 불평할 힘도, 정치에 관심을 가질 일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독주는 알콜중독이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생산성 저하와 산업재해가 날로 심각해져갔다.
결국 기업들은 독주 대신 다시 맥주를 권하기 시작했고 명맥이 끊길뻔 했던 맥주는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다시 생명을 얻게 된다. 이즈음 독일 사민당은 당원과 동지들에게 귀족과 토호들의 배를 불리는 증류주를 마시지 말자고 호소했다.
이들의 증류주 불매운동은 제국에 대한 반기로 받아들여지면서 좌우진영의 첨예한 대립을 부추겼고 결국 술 자체가 적대시 됐고 사회민주주의 진영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 금주령이 선포되기도 했다.
특히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산업화의 결과로 빚어진 모든 부정적 현상, 즉 범죄와 빈곤 등의 주범으로 술을 지목해 희생양으로 삼았다.
이후 20세기에 들어 금주운동은 정치적이고 무정부적인 노동자 세력을 뿌리 뽑고 자본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술, 혹은 맥주는 인류 역사 속에서 정치의 강력한 요소였다.
김대환 기자 top7367@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