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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전 악몽을 극복하고 대학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홍영동군. |
습관적으로 천안초등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는 선수가 있다. 등번호 29번을 달고 있는 이 선수는 천안초를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곳’으로 기억하고 있다.
2003년 3월 26일 밤 11시20분경 천안초 축구부 합숙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이곳에서 잠자던 축구부원 9명이 숨지고, 17명이 크게 다쳤다.
이후 천안초 축구부는 1년여 동안 해체됐고, 살아남은 대부분의 학생도 천안초를 떠났다.
모두가 떠난 곳에 축구부 선수로 천안초를 지키던 어린 학생이 있었다. 현재 천안제일고 3학년 축구선수로 뛰고 있는 홍영동(19) 군이 그 주인공. 홍 군은 7년 전 화염에 폐가 망가져 12살 나이에 10년 이상 흡연한 성인과 같은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폐로는 선수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축구선수로 성장,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다.
지금도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홍 군이 하루에도 20~30번 쓴 가래를 뱉어가며, 선수 생활을 이어온 것은 막연한 책임감이었다.
홍 군의 집에는 100여 명의 명단이 정리돼 있다. 중상을 입고,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초등학교 시절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이다.
성금이 담긴 봉투를 건넨 사람부터 폐에 좋다며 도라지를 건넨 사람까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죽은 친구들의 몫, 부모님과 도움을 주신 주변 분들의 기대, 그런 것이 저를 이끌어온 것 같습니다."
홍 군은 정말 축구밖에 몰랐다. 누구나 오는 사춘기가 뭔지 몰랐고, 여자친구를 한 번 사귀어본 적도 없다. 그런 그에게 얼마 전부터 의도하지 않은 혼자의 시간이 생겼다.
쇄골 골절과, 허벅지 근육 파열 등 연이은 부상이 그 시간을 허락했다. 팀 훈련을 마친 오후 6시부터 7시 50분까지 홍 군은 자격증 시험준비에 몰두했다. 4개월의 노력은 조경기능사 자격증 획득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홍 군은 이 때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축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소망했다. 이제 천안초 축구부 합숙소 화재사건의 생존자라는 동정론에서 자유롭고 싶다고.
“어렸을 때부터 축구밖에 몰랐고, 결국 축구로 대학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이끌림에 축구를 했다면 이제 즐기고 싶어요. 공부도 하고요. 분명한 것은 그동안 저에게 도움 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훌륭한 사람이 돼서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미래를 위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 홍영동 군은 대학생활에서도 축구선수로서의 멋진 활약을 약속했다. 한편 홍 군은 현재 지역의 모 대학 축구부 입학이 확정된 상황이지만 자신을 찾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축구가 아닌 또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 천안=유창림 기자
yoo772001@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