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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쇄납수 정일파 선생. |
이를 계기로 당진농악보존회(회장 이종현)는 선생을 기리는 '정일파 선생 농악상'을 제정해 매년 10월 2일 열리는 전국주부풍물대회장에서 시상식을 갖기로 결정했다.
이번 당진농악 발굴조사는 한국농악연구소(소장 한상수, 대전대 명예교수)가 당진군의 용역을 통해 현장조사로 그 동안 잊혀졌던 많은 당진 농악인들이 대거 발굴됐으며, 1970년대까지 전해져오던 '당진농악'의 명성을 재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이 조사를 담당했던 한상수 소장은 대학에서 구비 전승을 위해 한평생 연구해왔으며, 실제 한국 농악의 계보연구에 일가를 이뤄 현장조사 때는 문선이 사무국장과 동행해 당진군 전체 조사를 5개월여 동안 확인작업에 주력해왔다.
이 조사를 통해 잊혀진 행적이 들어난 인물로 정일파(1902~1981), 전근배(1892~1959), 채규태, 박재돈 등 수십 명에 이르고, 이 중 두드러진 인물이 바로 쇄납수 정일파 선생을 꼽을 수 있다.
정 선생은 당진 출생으로 6살 연하 표현옥씨와 결혼해 합덕읍 대전리 내동마을에 거주하며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당시 이우문 솟대쟁이패에서 쇄납수로 활약하다가 남사당패로 전환, 당시 쇄납의 1인자였으나 덧뵈기춤, 마술, 차력에도 능했다.
또 1920년대부터 오명선파 행중에 들어가 서울과 황해도를 돌며 공연했으며, 1935년대 가장 활발했던 김복만파 행중에서 전근배, 양동일, 남형우와 덧뵈기 전수를 받고 활약, 1960년에 재규합한 민속극회 남사당에서 활약하다가 1974년 최은창 걸립패에서 쇄납수로 활동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도 쇄납수 명성이 자자했고, 말년에는 고향 합덕에서 최성구, 채규태, 박재돈 등과 어울리며 내동마을 농악대를 지도해 왔다.
문선이 사무국장은 "깜박 잊고 있던 대선배들을 발굴하게 된 것은 전국주부풍물대회 1회 때부터 현재까지 심사를 해오신 한 소장님의 연구 덕분"이라며 "정일파 선생 농악상을 통해 전국에 산재한 농악인들을 발굴 시상해 격려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 첫해의 수상자는 당진농악의 원형 발굴조사에 직접 참여했던 한상수 한국농악연구소장이 수상자로 결정됐다.
당진=손진동 기자 dong5797@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