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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개봉한 ‘하하하’에 이어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옥희의 영화’는 4개의 옴니버스 구조를 차용하며 삼각관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4개의 다른 내용을 소재로 차이와 반복을 만들어내지만 영화의 흐름은 모든 에피소드가 하나로 연결되는 전체를 만들어간다.
영화는 새파란 화면 위에 소제목과 배우들의 이름이 등장하면서 막이 오른다. 각각 단편 주제는 ‘주문을 외울 날’, ‘키스왕’, ‘폭설 후’, ‘옥희의 영화’다.
첫 번째 ‘주문을 외울 날’은 삼십대 독립영화 감독이자 시간강사인 남진구(이선균)가 겪는 하루 일과를 그린다.
학교에서 남진구는 학생에게 인위적 틀 없이는 순수가 전달될 수 없다고 가르치고, 송 선생(문성근)을 만나서는 돈 때문에 얼룩진 세상에서는 책밖에 믿을 게 없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남진구는 교수들의 회식 자리에서 송 선생이 돈을 받고 교수를 시킨다는 소문을 듣고 술에 취해 송 선생에게 진위를 물으며 자리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두 번째 ‘키스왕’은 영화과 대학생인 진구(이선균)가 평소 좋아하던 같은 과 학생 옥희(정유미)에게 구애하는 내용이다.
진구는 좋아하는 옥희가 송 선생의 교수실 앞에서 귀를 기울이며 서 있는 것이 의문이 들지만 묻지 않는다. 진구는 옥희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며 크리스마스 날에는 집으로 찾아간다.
세 번째 ‘폭설 후’는 오십대 영화감독인 송 선생(문성근)이 그의 제자인 진구, 옥희와 강의실 장면이다. 폭설이 내린 다음 날 수업시간이 20분이나 지났는데도 학생들이 아무도 오지 않자 송 선생은 마침 마주친 교수에게 다음 학기부터는 영화에 전념하느라 나오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그런 와중에 옥희(정유미)와 진구(이선균)가 강의실에 도착하고 그들은 서로 질문하고 답변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마지막 ‘옥희의 영화’는 옥희가 사귀었던 젊은 남자(이선균), 나이 든 남자(문성근)와 각각 다녀온 산행을 교차시켜 만든 영화 속 영화다. 젊은 여자(정유미)가 내레이션으로 아차산에 올랐던 연애 경험을 교차시켜 보여준다.
영화 ‘옥희의 영화’는 인물의 내면, 각 편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네 편은 각각 독립적이지만 교묘하게 서로 얽혀 있다. 영화는 장들이 새로 시작될 때마다 등장배우의 크레디트도 새로 등장하며, 장의 전환이 이뤄질 때마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흐른다. 하지만 등장배우는 이선균, 정유미, 문성근이며 순서만 바뀔 뿐, 마지막 ‘옥희의 영화’에선 이 같은 형식을 상징하듯 배우들이 이름이 돌고 돌아오면서 화면에 나타난다.
홍상수 감독에게 이 ‘옥희의 영화’는 또 다른 실험이었다. 홍 감독은 최대한 악조건의 상황에서 영화를 만들었을 때 평소와 다른 것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서 정말 아무런 준비와 배경도, 잘 짜인 시나리오도 없이 만들었다. 영화는 감독을 포함해 스태프는 5명, 촬영 회차도 모두 13회에 불과했으며 제작비는 5000만 원이었다.
영화는 극 중 배우인 이선균, 정유미, 문성근은 각기 다른 단편에 번갈아 출연하면서 이름은 같지만 같은 인물인지 다른 인물인지 모호한 역할에 보는 관객들에게 의문을 던지게 한다. 결국 영화는 총 4편의 장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전부 다른 존재인 듯 하나 연관된 존재처럼 연결 짓게 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실들을 조합하게 만든다.
마지막 장에 옥희는 자신이 만든 영화에 대해 내레이션으로 설명한다. “많은 일들이 반복되면서 또 어떤 차이를 가지는 이 인생이란 게 뭔지 끝내 알 수는 없겠지만, 제 손으로 두 그림을 붙여놓고 보고 싶었습니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삶의 공식은 무수히 많기도 동시에 전혀 없기도 함을 제시한다. 또 서로 다른 그림들을 조합시키면서 자신이 기억하는 것 이상을 보고 깨닫게 하도록 제시한다.
상영시간 80분. 청소년 관람불가.
박주미 기자 jju1011@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