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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령왕릉 현실 | ||
무령왕릉을 포함한 이 일대의 고분들은 7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1∼6호분은 일본강점기에 조사됐고, 무령왕릉은 1971년 5, 6호분의 보수공사 때 발견됐습니다.
이 무령왕릉에 대한 일화가 있는데 일본강점기에 백제 고분을 죄다 도굴하던 일본인 가루베 지온은 무령왕릉을 보고도 인공적으로 흙을 쌓아올려 다른 고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착각했다지요.
그로 인해 후대에 온전히 국보급 보물들과 온갖 역사적 유물들을 우리가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송산리 6호분의 벽화는 웅진시대에 그려진 유일한 백제의 고분벽화입니다. 동벽에 청룡, 서벽에 백호, 북벽에 현무, 남벽에는 주작을 그리고 주위에 해와 달, 구름을 그려 넣었습니다.
벽화에 사신도가 그려진 곳은 고구려 벽화무덤과 중국 남조의 벽돌무덤이 있는데, 송산리 6호분 벽화가 어느 쪽과 관련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벽면에 요철이 심하여 그림 그릴 부분에만 특별히 진흙을 바르고, 그 진흙이 채 마르기전에 호분을 이용해 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멋진 그림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듯 합니다.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왕릉 중 유일하게 주인공이 밝혀진 무덤입니다. 그래서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와 출토 유물의 제작 시기도 함께 밝혀져 백제사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백제 무령왕릉에서는 108종 2906점에 달하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돼 찬란한 백제 문화의 진수를 지금까지 전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중국 남조 및 왜와의 국제관계도 알 수 있게 되었답니다.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송산리 제1~4호분(굴식돌방무덤)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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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산리 6호분 벽화. 이 벽화는 웅진시대에 그려진 유일한 백제의 고분벽화다. |
이미 도굴된 뒤에 조사되었지만 금제와 은제, 금동제의 유물이 출토돼 웅진시대(475~538) 백제사 복원에 큰 역활을 했다고 합니다. 도굴만 안 되었어도 많은 문화유산을 잃지 않았을텐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실제로 박물관의 국보와 보물들을 보고 있으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하며 예쁩니다.
그 시대의 금속 세공기술이 어찌나 발달했는지 요즘 팔아도 잘 팔릴 그런 세련미가 돋보이더군요.
도굴당하고 해외로 빠져나간 유물들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2PROO http://2pro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