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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성과 준법성을 요구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고사하고, 서민들은 꿈도 못 꾸는 각종 탈법과 편법 등을 해온 고위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가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청문회에 나온 고위 공직자들의 의혹 대부분은 권력과 신분, 재력을 바탕으로 ‘법을 무시한 일들’을 수차례 해 왔다는 점에서 서민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의 딸은 2005년 3월 한국 국적을 포기했지만, 2004~2007년 7차례에 걸쳐 부당하게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 청문회의 도마 위에 올랐다.
또 서울 강남 대치동 아파트를 팔면서 시세의 절반 가격에 판 것처럼 소위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매수자의 취·등록세 포탈에 가담한 사실이 청문회를 통해 밝혀졌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내정자는 학술지에 실은 자신의 논문 일부를 다음해 다른 학술지에도 중복 게재된 의혹을 사고 있으며,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는 위장전입 문제와 부인의 위장취업 의혹에 불거져 이에 대해 청문회에서 사과했다.
친서민 정책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의 하나인 지식경제부 이재훈 장관 내정자의 경우 부인이 서울 뉴타운개발 예정지 내 이른바 ‘쪽방촌’ 주택을 투기 목적으로 매입·소유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됐다.
더욱 큰 문제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제기된 의혹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로 밝혀지고 일부 의혹들은 범법행위에 속하지만, 내정자들의 ‘사과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덮어진다는 점이다. ‘사과 청문회’라는 조롱 섞인 지적이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는 24일 청문회에서 경남지사 재임 시절 자신의 부인이 관용차를 개인용도로 썼다는 의혹을 사실상 인정하고 유류비를 환급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치적·법적 책임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이재훈 장관 내정자도 투기 논란의 핵심인 ‘쪽방촌’ 주택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도덕적 책임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과 천안함 유가족 비하 발언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의 행보는 무책임한 사과 청문회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 미국 민주당 소속 뉴햄프셔 주 하원의원이 금도(襟度)를 넘는 발언을 했다가 곧바로 책임을 인정하고 의원직에서 물러나는 미국 정치 분위기와 상반된 모습이다.
고위공직자들의 자질 부족 등으로 낙마한 사례는 매번 되풀이돼 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박은경(환경부), 이춘호(여성부), 남주홍(통일부) 장관 내정자는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 자녀 이중국적 문제 등이 드러나 중도 하차했고,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는 위장전입 등으로 자진 사퇴했다.
이 같은 낙마 사례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하자가 있는 인사들이 되풀이해서 고위 공직자로 지명되는 이유는 사회지도층에 만연된 도덕 불감증과 인사 시스템의 문제 등에서 기인한다는 의견이 많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사회 지도층으로서 가져야 하는 의무와 책임은 망각한 채 권력과 지위를 악용하거나 법을 무시한 채 이득을 보려는 풍조가 만연돼 있는 것 같다”며 “지도층 일수록 더욱 엄격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선우 기자 swlyk@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