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나 잊을까 어찌 내 새끼를 잊어."
지난 3월 26일 밤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경비 활동 중이던 천안함이 침몰한지 오는 3일로 꼭 100일을 맞는다.
100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내 아들, 내 손자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돌아올 것만 같아 하루에도 몇 십번씩 대문을 앞을 내다본다.
천안함 46용사 중 한 명인 고 임재엽(27) 중사의 외할머니 유모(83) 씨 역시 혹여나 내 손자가 돌아올까 오매불망 대문 앞을 지킨다.
1일 오전 고 임 중사에서 집에서 만난 유 할머니는 마당 텃밭에서 불편해 보이는 몸을 이끌며 풀을 다듬고 있었다. '임재엽 중사' 이름만 꺼냈을 뿐인데 유 할머니의 눈에선 벌써부터 그리움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할머니 다녀올께요" 말 한마디 남기고 떠난 뒤 이제 더 이상 돌아오지 않지만, 아직도 할머니 마음속에는 착하디 착한 외손자로 남아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외갓집에서 살아온 임 중사는 항상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먼저 챙기는 효심 싶은 손자였고, 2004년 해군 하사관으로 임관한 후 휴가 때마다 용돈을 챙겨줬던 기억이 선하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얼마나 착했는지 몰라. 머든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먼저였고, 어린 것이 군인하면서 돈 번다고 휴가 나와 종종 용돈까지 주고 가더니만…, 우리 새끼 보고 싶어 어째"
"귀신은 착한놈만 먼저 데려간다더니 하늘도 무심하지 착한 우리 손자만 데려가버렸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적지 않은 나이 탓에 다리와 허리가 불편해 거동이 쉽지 않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당에 나와 텃밭을 다듬으며 먼저 보낸 손자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쓴다.
"이거라도 안하면 내 새끼 생각나서 못살아. 죽으면 잊어질까 어떻게 내 새끼를 잊어버리나"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아들과 동생을 떠나보낸 고 임 중사 가족들 역시 잊혀지지 않는 슬픔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고 했다.
유 할머니는 "애 엄마나 누나들도 재엽이 생각에 밥도 잘 못먹고, 살도 쏙 빠졌다"며 "아직도 아들 사진이나 쓰던 물건을 보면서 한참 울기도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묘역을 청소하며 '천안함 46용사의 어머니'로 불리는 고 임 중사의 어머니 강금옥(56) 씨는 이날도 아침 일찍부터 아들과 아들 동료들을 만나러 대전현충원에 갔다고 했다.
자식 잃은 부모는 '죄인'이라는 생각에 매일같이 묘역을 찾는다는 강 씨는 하늘에 있는 아들과의 약속대로 100일을 빠짐없이 다녔지만 유 할머니는 100일이 아니라 또 다시 1000일이 될까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유 할머니는 "하루에 2번이나 가는 때도 있다"며 "그만하라고 말려도 아들과 약속한 게 있다고 딱 100일만 간다고…. 평소 몸도 약한데 큰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했다.
또 몸이 불편해 자주 손자를 보러가지 못해 미안하다는 유 할머니는 이번 100일 추모제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유 할머니는 "재엽이 할아버지와 내가 몸이 불편하니까 식구들도 현충원에 가는 걸 만류한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꼭 가서 우리 손자 보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근 기자 jack333@cctoday.co.kr
지난 3월 26일 밤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경비 활동 중이던 천안함이 침몰한지 오는 3일로 꼭 100일을 맞는다.
100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내 아들, 내 손자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돌아올 것만 같아 하루에도 몇 십번씩 대문을 앞을 내다본다.
천안함 46용사 중 한 명인 고 임재엽(27) 중사의 외할머니 유모(83) 씨 역시 혹여나 내 손자가 돌아올까 오매불망 대문 앞을 지킨다.
1일 오전 고 임 중사에서 집에서 만난 유 할머니는 마당 텃밭에서 불편해 보이는 몸을 이끌며 풀을 다듬고 있었다. '임재엽 중사' 이름만 꺼냈을 뿐인데 유 할머니의 눈에선 벌써부터 그리움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할머니 다녀올께요" 말 한마디 남기고 떠난 뒤 이제 더 이상 돌아오지 않지만, 아직도 할머니 마음속에는 착하디 착한 외손자로 남아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외갓집에서 살아온 임 중사는 항상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먼저 챙기는 효심 싶은 손자였고, 2004년 해군 하사관으로 임관한 후 휴가 때마다 용돈을 챙겨줬던 기억이 선하다고 할머니는 말한다.
"얼마나 착했는지 몰라. 머든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먼저였고, 어린 것이 군인하면서 돈 번다고 휴가 나와 종종 용돈까지 주고 가더니만…, 우리 새끼 보고 싶어 어째"
"귀신은 착한놈만 먼저 데려간다더니 하늘도 무심하지 착한 우리 손자만 데려가버렸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적지 않은 나이 탓에 다리와 허리가 불편해 거동이 쉽지 않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당에 나와 텃밭을 다듬으며 먼저 보낸 손자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쓴다.
"이거라도 안하면 내 새끼 생각나서 못살아. 죽으면 잊어질까 어떻게 내 새끼를 잊어버리나"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아들과 동생을 떠나보낸 고 임 중사 가족들 역시 잊혀지지 않는 슬픔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낸다고 했다.
유 할머니는 "애 엄마나 누나들도 재엽이 생각에 밥도 잘 못먹고, 살도 쏙 빠졌다"며 "아직도 아들 사진이나 쓰던 물건을 보면서 한참 울기도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묘역을 청소하며 '천안함 46용사의 어머니'로 불리는 고 임 중사의 어머니 강금옥(56) 씨는 이날도 아침 일찍부터 아들과 아들 동료들을 만나러 대전현충원에 갔다고 했다.
자식 잃은 부모는 '죄인'이라는 생각에 매일같이 묘역을 찾는다는 강 씨는 하늘에 있는 아들과의 약속대로 100일을 빠짐없이 다녔지만 유 할머니는 100일이 아니라 또 다시 1000일이 될까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유 할머니는 "하루에 2번이나 가는 때도 있다"며 "그만하라고 말려도 아들과 약속한 게 있다고 딱 100일만 간다고…. 평소 몸도 약한데 큰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했다.
또 몸이 불편해 자주 손자를 보러가지 못해 미안하다는 유 할머니는 이번 100일 추모제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유 할머니는 "재엽이 할아버지와 내가 몸이 불편하니까 식구들도 현충원에 가는 걸 만류한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꼭 가서 우리 손자 보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근 기자 jack333@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