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철새의 서식지 몽골을 가다]④위풍당당한 자태…검독수리를 만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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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와 검독수리는 나란히 천연기념물 제243-1호와 제243-2호로 지정된 같은 수리과에 속해 있지만 행태는 전혀 다르다. 독수리는 소위 말해 '하늘의 제왕'으로 일컬어지지만 검독수리에 비하면 사실 독수리는 살아있는 작은 쥐 한 마리도 사냥하지 못하고 오로지 사체(死體)만 먹어 치우는 '자연의 청소부'에 불과하다. 반면 검독수리는 독수리보다 몸집은 작지만 생김새부터 일단 위압감을 준다. 범접하지 못할 카리스마가 넘친다. 갈고리처럼 야무지게 구부러진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은 여우 한 마리쯤 단숨에 숨통을 끊어 놓기에 충분하다. 다리를 내리고 발톱을 한껏 세운 채 V자 형태로 약간 날개를 들어 전속력으로 돌진, 순식간에 먹이를 낚아 챈다. 약육강식, 생태계의 엄정한 질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셈이다. 검독수리의 살아있는 야성 덕분에 몽골에선 검독수리 사냥 풍습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거대한 원(元)제국을 경영했던 칭기스칸이 가장 즐겼던 놀이가 바로 검독수리 사냥이었고 과거의 영화를 되새기는 몽골 나담축제의 백미 또한 이 검독수리 사냥이라고 한다. 몽골 주요 관광지나 초원 곳곳에서 눈을 가린 채 다리에 줄을 맨 검독수리를 팔에 앉힌 유목민을 자주 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몽골에서 검독수리를 처음 만난 건 맹금류 번식지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에르덴산트가 아니라 바가노르 인근 지역에서 였다. 3일 간의 에르덴산트 바트한산 탐조에 앞서 본사 취재진은 물새 탐조를 위해 바가노르(울란바타르에서 동쪽으로 150㎞)를 찾았다. 주민의 증언을 토대로 후크노르라는 호수를 찾던 중 고산지대로 둘러싸인 한적한 곳에서 독수리와 검독수리, 까마귀 떼를 만날 수 있었다. 죽어 있는 소 한 마리를 놓고 먹이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사체의 상태로 봐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보였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먹잇감을 중심으로 하늘엔 독수리와 검독수리, 초원수리, 솔개, 말똥가리 등 수리과에 속한 포식자들이 모여들었고 까마귀 떼도 가세해 하늘은 순식간에 큰 싸움터로 변했다. 그 사이에서 운 좋게 검독수리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검독수리의 출현으로 상황이 순식간에 종료되긴 했지만 검독수리는 먹이 주변에 취재진이 서성이는 게 못마땅했는지 이내 자리를 피했다. 에르덴산트 바트한산에서의 탐조기간 동안에도 취재진은 검독수리의 행태를 몇 차례 관찰할 수 있었다. 방목된 염소와 말 등이 바트한산을 자유롭게 오르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운이 좋다면 검독수리의 사냥 실력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처음 만난 사이라 그런지 결국 히든카드까진 보여주질 않았다. 그러나 바위산 중턱 곳곳에 온갖 동물의 뼈가 널려 있는 것을 보면 야생의 삶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바트한산에서 발견한 20여 개의 둥지 가운데 서너 개가 검독수리의 둥지로 확인됐는 데 어린 놈은 발견하지 못했다. 낭떠러지 바위 틈에 둥지를 트는 습성 때문에 검독수리 둥지 자체를 발견하기도 어려웠고 운 좋게 둥지를 발견해도 근접할 수 없는 곳에 위치해 있어 독수리 둥지 관찰과 같은 성과를 얻진 못했다. 드넓은 초원과 하늘을 경영하는 맹금류의 살아있는 전설, 검독수리의 자태를. ㅤ▲쉽게 볼 수 없게 된 텃새 … 검독수리
우리나라에서 검독수리를 발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운 것은 개체수가 얼마 되지 않는 이유도 있겠지만 사람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높은 산 낭떠러지 바위 틈에 둥지를 틀기 때문이다. 특히 검독수리는 독수리와 달리 2∼4개의 알을 낳는다. 식욕이 왕성한 이 새끼 검독수리들을 60여 일 동안 건강하게 키우려면 번식지 주변에 많은 동물이 살아야 하는데 '개발지상주의'의 틈 속에서 이미 검독수리의 많은 먹잇감이 사라져 버렸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검독수리가 우리나라에서 일종의 도박처럼 새끼 양육을 선택할리 만무하다. 겨울철 몽골과 러시아에서 번식한 어린 검독수리들이 우리나라를 찾지만 그 수도 얼마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 철원에선 독수리 틈에 끼어 월동하는 어린 검독수리 몇 마리를 볼 수 있고 2003년에 이어 지난해 11월, 서산 천수만에서 한 마리의 검독수리가 발견돼 겨울철새 탐조가와 연구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지난 1월엔 금강 상류 미호천 합류지점인 금남대교 인근에서 검독수리가 처음으로 발견됐는 데 역시 단 한 마리였다. 검독수리가 이 땅에서 번식해 다시 한 번 텃새로서 살아갈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몽골=이기준 기자 poison93@cctoday.co.kr 사진=우희철 기자 photo291@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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