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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얄개들

2008. 10. 31. 10:55 from 사는이야기

빨리 크기를 소망했다. 어른이 되고 싶었다. 소년이 싫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처마 밑 대들보에 금까지 그어가며 키를 쟀다. 콩나물시루처럼 아침이면 부쩍 커있는 나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자라지 않았다. 사춘기는 아프기만 할뿐이었다. 목소리는 변성기를 앓고 가슴은 부질없는 속앓이를 했다. 무서웠다. 꿈조차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공부를 멀리 하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눈을 팔게 되었다. 다름 아닌 딴따라. 친구들과 <좋은 친구들>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나는 기타 치는 재주가 없어 부득불 드럼을 맡았다. rock~&~roll.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우린 벽촌으로 숨어들어 연습을 시작했다. 제천 두학면 자작리라는 곳인데 퍼스트 기타 겸 보컬을 맡은 친구가 그곳에 살았다. 비포장도로를 한없이 달려 종점에 다다르면 버스 돌릴 공터도 없는 깡촌(강촌)이었다. 그곳에 모인 네 명의 친구는 기타 두 명, 베이시스트, 드럼으로 나뉘어 밤낮으로 연습했다. 버스 종점은 사람을 그리움에 사무치게 하는 습성이 있다. 출발점을 종점으로 하고 종점을 출발점 삼는 버스를 보며 인생이 뭔가하는 감상에 젖는다.

드럼은 용돈을 모아 중고로 구입했다. 주로 연습한 곡은 ‘건아들'의 ’젊은 미소‘였다. 당시 젊은 미소를 완주(完奏)하면 다른 곡들도 쉽게 연주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 들국화(전인권), 부활(이승철) 등의 곡도 주된 연습곡이었다. 우린 네오나치 패거리들이 선호하는 스킨헤드를 하고는 날마다 쿵쿵따다~쿵쿵따다 했다. 물론 악보 보는 법을 잘 몰라 드럼의 경우 카세트 음악을 들으면서 음계를 카피했다. 들으면서 카피하면 청음능력도 좋아지고 각 파트의 소리의 차이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악보를 볼 줄도 쓸 줄도 모른다"고 말한 mr.Big의 빌리시안의 말처럼).

림숏, 하이햇 오픈-클로스 같은 기본적인 주법은 대강 교본을 보고 기본적인 레퍼토리를 구성하고 나머지는 대강대강 때렸다. 스네어 드럼(snare Drum)과 하이-헷 심벌(Hi-Hat-cymbal)을 기본으로 치고 크래쉬 심벌(Crash Cymbal), 스몰 탐탐(Small Tom Tom), 라지탐탐(Large Tom Tom), 라이드 심벌(Ride cymbal)등을 기각기 한다. 기각기는 스네어-스몰탐탐-라지 탐탐을 2연음이든지 3연음, 혹은 4연음 등을 리듬, 박자에 맞추어 차례로 돌려치는 것을 말한다. 하이햇이 8비트라면 각기는 16비트로 돌리면 된다. 쿵 딱 쿵 딱 두구두구 두구두구 두구두구 두구두구 챙~, 쿵딱은 킥과 스네어이고 두구두구는 스네어-스몰탐-라지탐-플로어탐을 말한다. 각기를 부드럽게 돌리려면 드럼의 고무판을 제대로 맞춰야 한다. 베이스 드럼(Base Drum)은 큰 북처럼 생긴 것으로 발로 꾹꾹 밟는다. 그런데 손과 발이 따로 놀아야 한다는 게 제일 고역이었다. 스네어드럼은 왼손, 하이-헷 심벌은 오른손, 오른 발로는 베이스드럼을 밟는데 박자에 따라 손발이 낑낑댔다. 엇박자였다.

친구의 집은 가난했다. 때문에 삼시(三時) 세끼가 문제였다. 밥은 있는데 반찬이 없었다. 그렇다고 젊은것들이 모여 공부는 안하고 미친 년 꽹과리 치듯이 놀고 있으니 반찬이 좋을 리 없었다. 1식1찬, 밥과 고추가 전부였다. 청양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 게 유일했다. 청춘의 매콤한 반찬, 그래도 젊어서인지 눈물 콧물 다 빼며 맛나게 먹었다.

연습한지 두 달이 넘었을 즈음 초등학교 분교 운동장에서 첫 공연을 했다. 교단에 악기를 설치하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홍보를 했다. 심지어는 이장께서 마이크 방송까지 해주었다. 오후6시에 시작한 공연은 단 40분 만에 막을 내렸다. 관객이 30여명에 불과한 것도 맥 빠지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공연 자체가 엉망진창이었다. 화음은 둘째 치고 저마다 잘났다고 따로 놀았다. 곡이 맞을 리 없었다. ‘젊은 미소’ 한 곡이 끝나자 관객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드럼을 치다가 스틱이 날라 가는 사고도 있었다. 악사가 연장을 놓치다니. 완전한 실패였다. 연습이 짧았다는 자위(自慰)는 하나마나였다.

40분 만에 막을 내린 얄개들의 첫 공연은 결국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그후 드럼을 택시에 싣고 운반하는 도중 사람만 내리고 드럼은 놔두고 내렸다. 멍청한 드럼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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