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지역공동체 정신 살리는 소통의 징검다리…"
"전국 첫 통합체육회 출범시킨 대전, 체육계 모범사례"
▲ 54년 말띠 동갑이자 고향이 대전인 권선택 대전시장(오른쪽)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시청에서 만나 유년시절을 회상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
까까머리 고교시절 운동에 미쳐 살던 스포츠광들이 어느새 중년을 훌쩍 넘었다. 야구광을 자처했던 대전고 출신은 대전시장이자 대전시체육회장이 됐고, 만능스포츠맨으로 불리우던 보문고 출신은 우리나라 체육의 수장인 대한체육회장이 됐다. 54년 말띠 동갑, 권선택 대전시장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40여년 만에 자신들의 고향인 대전에서 만나 그간 못다한 회포를 풀었다.
◆10년 만에 푼 회포
대전시청에 들어선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발걸음이 가볍다. 동년배인 권선택 시장과 오랜만의 조우를 위해 아침잠도 물리며 서울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왔다. 이 회장이 10층 접견실에 앉아 숨을 돌리는 사이 권 시장이 반색하며 버선발로 달려왔다.
“이기흥 회장, 이게 얼마 만입니까. 10년 만에 다시 만나니 감회가 참 새롭습니다. 아침부터 서울서 대전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겠습니다.”
“권 시장님 보러 7시40분 기차 타고 대전에 왔습니다. 먼 거리에서 응원만 하다가 이렇게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두 명사의 첫 만남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권 시장은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정치 인생을 막 시작한 때였고 이 회장은 대한수영연맹 회장을 맡아 동분서주할 때였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우연찮게 만난 두 사람은 말띠 동년배, 충청도 사람이라는 공통점 아래 고향 이야기부터 학창시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기탄없이 나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두 사람의 정은 아직 그 시절 그대로였다.
이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권 시장의 행적을 보면 22살의 나이에 최연소로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행정자치부 행정과장, 내무부 지방기획과장과 지방행정과장, 행정자치부 자치행정국장 등 충청권에서 큰 인물”이라며 “심대평 전 충남지사와 견줄 정도로 커리어가 대단했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시절에도 열의가 찬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고 말했다.
권 시장은 이 회장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부끄러워했다.
“이 회장이야말로 대단한 분. 사람을 아우르는 힘이 대단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맥이 끝없는 분 아닌가. 내가 대전에서 시장을 하며 대전시체육회장을 맡았다면 이 회장은 대한체육회를 이끄는 대한민국 스포츠대통령이지요.”
권 시장과 이 회장은 그동안 지내왔던 세월을 반추하며 추억에 빠져들었다.
시청 잔디밭을 거닐며 몇 마디 대화가 오고 간 후 권 시장이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이 회장 그럴 게 아니라 우리 부사동 한번 갑시다.”
“시장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한밭체육관 가서 옛날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어요.”
“까짓거 좋지요. 같이 갑시다.”
◆풍경은 변했지만 사람은 그대로
“여기가 예전에는 전부 비행장이었는데 참 세월 많이 변했어요.”
이 회장이 대전시청을 나서며 운을 떼자 권 시장이 화답한다. “천지개벽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대전은 대흥동, 선화동, 은행동이 전부인 줄 알았지요. 제가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나오다 보니 아주 어릴 적에는 대흥초 나오는 게 소원일 때도 있었어요.”
이 회장은 권 시장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다. 그때 대흥초는 부잣집 도련님들만 다니는 학교였지요. 돌이켜보면 유성에 한번 가려면 대흥동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고 갈 정도로 멀게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참 가까워졌지요. 군대를 공군으로 나왔는데 예전 둔산동은 비행장 말고는 모두 포도밭밖에 없었어요.”
세월이 지나며 풍경도 변했다. 포도밭은 도시가 됐고, 비행장에는 시청이 들어섰다. 과거 시청과 도청사가 있던 시가지는 구도심이 돼 옛 영광의 흔적만 남아있다. 까까머리 청년들도 풍경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얼굴에 주름이 하나둘 박혀있다. 하지만 마음은 아직도 변치 않았다.
차 안에서 풍경을 한참 바라보던 권 시장이 이 회장에게 말을 붙였다. “이 회장님, 학창시절 이야기 좀 합시다.”
“저요? 그때가 참 옛날인데 보문고 다녔을 때 흥사단 활동을 좀 했어요. 혈기가 왕성하니 뭐든 닥치고 열심히 했죠. 보문고가 불교학교이니 종교 활동도 많이 했고, 덕분에 지금은 조계종 전국신도회장까지 맡게 돼버렸지요. 권 시장님 대전고 다닐 때 학교가 야구 무지하게 잘했지 않나요.”
“제가 충남중, 대전고를 나왔는데 모두 야구학교만 다녔어요. 학교 다닐 때도 야구가 얼마나 좋았는지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 몰래 도망쳐서 야구장에 자주 갔었어요. 주말이면 공부를 얼른 마치고 친구들이랑 야구를 보러 갈 때 기분이 그렇게 좋았었습니다.”
이 회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권 시장님도 수업 빼먹고 야구장 갈 줄은 몰랐네요” 라고 반문했다.
“그때 고교야구 대단했지요. 이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당시에는 대전고와 대성고가 쌍벽을 이뤘는데 경기서 한 번 맞붙었다 하면 단체 패싸움이 날 정도로 인기가 뜨거웠지요.”
권 시장과 이 회장이 학창시절을 보냈던 1970년대는 아직 프로야구가 태동하기 이전인 시대로 고교야구가 전국을 휩쓸고 있었다.
전국의 고교 야구단은 황금사자기, 청룡기 대회의 우승기를 거머쥐려 사투를 벌였고, 덩달아 학교에 야구단이 있는 고교생들은 학창시절에 야구를 빼놓을 수 없고는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남보다 키도 작고 신체조건이 좋지 않아 야구를 잘은 못 하지만 보는 것은 남 못지않게 좋아해요. 야구를 너무 좋아하다보니 지난달 한화이글스 개막 경기에 시구까지 했습니다.”
◆체육 한번 키워봅시다
승합차가 봄바람을 시원하게 달리고 있다. 이 회장이 권 시장에게 체육 이야기를 꺼냈다.
“스포츠를 통해 단합하고, 협동하고, 배려하고 또 심판의 결정에 승복하는 과정이 청소년에게 민주시민 소양을 가르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습니까? 요즘 학교는 너무 공부만 시키고 체육은 뒷전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 회장님 그게 저도 고민입니다. 학생들에게 체육을 잘하게끔 하고 싶은데 대전시 공공체육 시설면적이 전국 평균의 절반도 안 됩니다. 부산이나 대구, 인천, 광주는 아시아경기대회나 육상선수권 유치해서 인프라를 구축했는데 대전은 국제 규모 경기장이 없어요.”
권 시장의 이야기를 듣던 이 회장은 ‘서남부종합스포츠타운’ 이야기를 던졌다.
“권 시장님, 서남부스포츠타운 개발하려는 것이 말하자면 독일의 ‘골든 플랜(서독이 1960년 15년 계획으로 수립한 스포츠 시설 건설 계획)’ 같은 것 아닙니까?”
“부사동 체육관, 야구장, 운동장이 1950~1960년대 지어졌으니 이제 대전도 종합체육관 다시 지을 때가 됐습니다. 이 회장께서 이야기한 서독의 계획을 벤치마킹해 ‘대전형 골든 플랜’을 추진하고 있지요.”
“제가 대한체육회장이 된 지가 7개월이 됐는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전국 시군구에 스포츠타운을 세우고 싶습니다. 여기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방과 후에 스포츠클럽, 리그활동을 하고 주민도 함께 즐기면 이 자체가 커뮤니티 공간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회장은 대전시가 수립한 ‘2030 대전도시기본계획’에 관심을 가지며 서남부스포츠타운 조성사업에 대해 최대한 돕겠다고 약속했다.
권 시장은 오는 20일부터 내달 11일까지 대전을 비롯해 전국 6개 도시에서 열리는 ‘FIFA U-20 월드컵’에 대한 지원을 부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야구광을 자처했던 대전고 출신은 대전시장이 됐고 만능스포츠맨으로 불리우던 보문고 출신은 우리나라 체육의 수장인 대한체육회장이 됐다. 권 시장(왼쪽)과 이 회장이 시청 공원을 거닐며 서로의 성장과정을 애기하고 있다. 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
◆독수리여 비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