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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 ['아메미야' 엽서 이야기] - 100년전 공주 섶다리로 시간여행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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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시정 5주년 기념엽서.쌀과 면화의 재배면적, 생산량, 수이출수량에 대한 통계등이 담겨있어 이채롭다.

조선총독부 시정 5주년 기념엽서는 면화와 쌀 모양의 칼라 그림 위에 쌀과 면화를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군산항 부두와 목포항 부두에 가득 쌓아 놓은 2장의 흑백사진이 실렸다.

엽서의 오른쪽에는 대정원년(1911년)과 대정2년(1993년), 대정3년(1914년)의 쌀과 면화의 재배면적, 생산량, 수이출수량에 대한 통계가 나와 있다.

또 쌀, 명태, 면화, 새우로 디자인 한 소인에는 ‘조선총독부시정5주년기념’이라는 글귀와 함께  ‘대정(大正) 4년 10월 1일자(1915년) 공주’라고 찍혀 있다.

당시 대부분의 우편엽서는 지역의 유명 관광지, 자연, 건물 등을 넣어 제작한 것에 비하면 아주 드문 예이고 당시의 한국 경제 통계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보인다.

엽서에는 군산항미곡집적 / 상황(群山港米穀集積/狀況)과 목포항면화집적 / 상황(木浦港棉花集積 / 狀況) 등 2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 쌀과 면화의 재배면적, 생산량, 수이출수량에 대한 통계.
또 오른쪽 통계표를 분석해 보면 쌀 수확고가 1911년 대정원년(大正元年) 8,982,000석(石)에서 1914년 대정3년에는 12,159,167석(石)으로 약간 늘은 반면 일본으로 가져간 수이출수량(輸移出數糧)은 577,930석(石)에서 1,321,870석(石)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면화도 마찬가지로 생산고가 대정원년에는 30,283,131근(斤)에서 대정3년에는 36,167,841근(斤)으로 조금 늘어난 반면 일본으로 가져간 면화의 량은 2,482,500근(斤)에서  4,408,800근(斤)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아마도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 이후 쌀, 면화의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음을 통계표 및 관련 사진으로 통해 보여주고 일본인의 우월성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일제의 수탈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 사진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우희철 기자 photo291@cctoday.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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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발행된 조선총독부 시정1주년 기념엽서 중 한 장. 전남 소재의 '죽도등대''인천 수도(水道) 수원지(水源地)' '광양만 염전'사진으로 꾸며졌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조선총독부는 자신들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매년 ‘조선총독부 시정(始政) 기념’ 우편 엽서를 발행했다.

1911년 발행된 조선총독부 시정 1주년 기념엽서 중 한 장에는 한강과 한강철교(1897년 3월 착공, 1900년 7월 준공), 붉은색 무궁화 꽃 두 송이를 배경으로 흑백사진 3장을 넣어 제작했다.

정사각형 흑백사진에는 1907년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전남 진도 남서방 죽도에 설치한 ‘죽도등대’의 사진이다. 일본인으로 보이는 3명의 남자가 등명기 앞에 서 있고 앞쪽으로는 에어싸이렌도 보인다. 항간에는 죽도 등대가 독도에 있는 등대라고 잘못 알려진 기사도 있지만 사실적 근거로 보면 진도 앞바다에 있는 등대가 확실하다.

가운데 원형 사진은 ‘인천 수도(水道) 수원지(水源地)’의 전경사진이며 아래쪽 직사각형 사진에는 ‘광양만 염전’의 사진이 실렸다.

엽서 사진에 등장한 모든 시설은 한일합방 이전에 일본인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들로 일본인의 우수성을 한국인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작했다는 느낌이 주고 있다. 우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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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발행된‘경성우편국’채화엽서

1915년 발행된 ‘경성우편국’ 채화엽서는 조선총독부 시정 5주년 기념으로 발행한 우편엽서중 하나이다.

경성우편국은 지하1층 지상3층 연면적 1,320평의 벽돌과 석조의 혼합구조로서 매우 화려하고도 거대한 건물로 1913년 10월에 착공해 1915년 9월에 준공했다.

양식은 사라센식이 가미된 영국 르네상스식으로 그 설계자는 미상이나 주위의 조선은행과 대조되어 아름다운 건물의 하나였다.

조선은행 · 경성부청사 · 총독부청사와 같이 중앙에는 근대형식적인 돔을 얹었고 창틀은 아치 형식으로 꾸몄으나 6 · 25전쟁 때 폭격으로 인하여 소실되었다.

경성우편국 사진으로 제작된 우편엽서는 여러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인터넷 개인 블로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엽서는 사진이 아닌 그림 형태로 보여주는 채화엽서로 건축물의 웅장함이나 아름다움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 건물의 옆에는 일본식 출구가 있었으나 엽서에는 그러한 모양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엽서를 제작한 당사자가 입체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 전면부만 볼 수 있는 형태 제작하는 바람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엽서는 대부분이 흑백사진을 바탕으로 만들어 실질적인 건축물의 칼라가 제대로 반영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경성우편국 엽서 중 최악의 엽서가 아닌가 싶다.우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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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미아' 기증 엽서로 읽는 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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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미아 기증 유물 엽서. 공주 섭다리(공주금강교)

1910년대 공주 금강에 세워진 섶다리(산성교)의 모습이 담겨 있는 최초의 사진엽서이다. 다리의 크기는 자동차 통행이 가능했을 정도로 컸으며 다리를 건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강 건너편으로는 공산성 공북루의 모습과 산 능선의 쌍수성이 보인다.

엽서사진속의 섶다리는 현재 금강철교의 상류에 있었으며 당시의 말뚝이 현재까지 남아 있어 갈수기에는 볼 수 있다. 섶다리는 1920년대 들어 배다리로 고쳐 세워지고 1933년에는 현재의 금강철교가 준공 되었다.

우편소인에 [立太子禮紀念 公州]라 되어 있어 히로히토 일본 국왕이 태자에 즉위한 해인 1916년에 공주에서 발행된 엽서로 추정된다.

   
▲ 2007년 백제문화제 당시 공산성 공북루앞에 임시로 가설한 섶다리 모습. 엽서속 사진과 반대편에서 촬영된 모습이다. (충청투데이 자료사진)

아메미아 히로스케(雨宮宏輔) 공주회 회장이 충남역사박물관에 기증한 유물 중 엽서에 나타난 사진을 보면서 당시의 생활상을 살펴보았다. 학계를 통해 알아 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는 것을 밝혀둔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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