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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시정 5주년 기념엽서.쌀과 면화의 재배면적, 생산량, 수이출수량에 대한 통계등이 담겨있어 이채롭다.

조선총독부 시정 5주년 기념엽서는 면화와 쌀 모양의 칼라 그림 위에 쌀과 면화를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군산항 부두와 목포항 부두에 가득 쌓아 놓은 2장의 흑백사진이 실렸다.

엽서의 오른쪽에는 대정원년(1911년)과 대정2년(1993년), 대정3년(1914년)의 쌀과 면화의 재배면적, 생산량, 수이출수량에 대한 통계가 나와 있다.

또 쌀, 명태, 면화, 새우로 디자인 한 소인에는 ‘조선총독부시정5주년기념’이라는 글귀와 함께  ‘대정(大正) 4년 10월 1일자(1915년) 공주’라고 찍혀 있다.

당시 대부분의 우편엽서는 지역의 유명 관광지, 자연, 건물 등을 넣어 제작한 것에 비하면 아주 드문 예이고 당시의 한국 경제 통계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보인다.

엽서에는 군산항미곡집적 / 상황(群山港米穀集積/狀況)과 목포항면화집적 / 상황(木浦港棉花集積 / 狀況) 등 2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 쌀과 면화의 재배면적, 생산량, 수이출수량에 대한 통계.
또 오른쪽 통계표를 분석해 보면 쌀 수확고가 1911년 대정원년(大正元年) 8,982,000석(石)에서 1914년 대정3년에는 12,159,167석(石)으로 약간 늘은 반면 일본으로 가져간 수이출수량(輸移出數糧)은 577,930석(石)에서 1,321,870석(石)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면화도 마찬가지로 생산고가 대정원년에는 30,283,131근(斤)에서 대정3년에는 36,167,841근(斤)으로 조금 늘어난 반면 일본으로 가져간 면화의 량은 2,482,500근(斤)에서  4,408,800근(斤)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아마도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 이후 쌀, 면화의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음을 통계표 및 관련 사진으로 통해 보여주고 일본인의 우월성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일제의 수탈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 사진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우희철 기자 photo291@cctoday.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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