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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아줌마 대축제를 마치며]고형석 수습기자

첫째 날 : 좌충우돌 우려가 현실로

수습교육이 한창이던 어느 날.

2008 아줌마 대축제 온라인 팀 실시간 생중계를 위해 카메라를 잡을 인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디지털카메라의 온·오프 스위치도 못 찾아 헤매고 휴대전화도 설명서를 들여다봐야지 기능을 어느정도 숙지하던 내가 생중계 카메라를 잡게 될 줄이야.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모든 기계에 대한 두려움과 만졌다 하면 고장과 실수를 연발하며 이제 껏 살아온 나로서는 생중계 카메라를 잡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당 부장님께 무리라고 말씀 드렸다. 들은 척도 안하시더라. 그냥 하면 된다는 말만 되풀이 하셨다.

결국 아줌마 대축제 실시간 생중계 카메라를 잡게 됐다. 카메라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설명을 들었다. 정말 이해 안 되더라. 이 버튼은 뭐고 저 버튼은 뭐고 어쩌고 저쩌고 설명은 듣는데 이건 대체 무슨 소린지.

그 상태로 축제 첫 날 카메라를 잡았다. 걱정은 어느새 현실로 다가왔다. 화면을 놓치는 것은 다반사요. 줌은 또 왜 이리 사람 속을 뒤집는지.

등 뒤에선 공연이 안 보인다는 아줌마들의 원성까지 더해져 부담은 어느새 수 십배가 됐다.

결국 자꾸 끊기는 무선 생중계의 유선화와 좀 더 나은 화면 확보를 위해 공연 중간 관람석 가운데 있던 생중계 카메라를 무대 좌측으로 옮겼다.

보너스로 급조된 생중계 카메라 단상까지.

이로써 잘 보이지 않는다는 아줌마들의 항의를 피할 수 있게 됐고 나만의 자리가 생겼다는 점에서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힘겨웠던 첫 날이 갔다.


둘째 날 :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참 더웠다. 나의 생중계 화면도 더위를 먹은 양 왔다 갔다 흔들흔들.

카메라 단상이 생겨 편해졌던 마음은 어느새 하늘에서 연신 내리쬐는 햇빛으로 인해 후회로 다가왔다. 광고지를 뒤집어 써보다가

결국 수건을 뒤집어쓰고 생중계를 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팔은 카메라를 놓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일사병의 정체를 알게 됐다.

문득 무대 뒤 커다란 스크린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빼고 음향·조명 등을 담당하는 팀에서 촬영하는 화면이 스크린을 장식하고 있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 했던가.

‘저거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머리가 나쁜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남들 같으면 그 정도 생각은 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나는 하루가 지나서야 그 생각을 했다.

스크린에 나오는 화면을 따라 생중계를 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전문가가 촬영하는 화면이라 그런지 역시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줌을 당겨야 할 부분과 밀어내야 할 부분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사람을 비추는 스크린 화면 속도도 따라해 봤다.

절대적인 주관이지만 생중계가 한결 부드러워 졌다는 생각에 어깨가 괜 시리 으쓱.

유진박, 박강성 등이 출연한 낭만콘서트 촬영 때가 되서는 자신감 이라는게 생겼다. 이게 제대로 하는 게 맞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지만 따라 하기라도 하면 ‘중간은 하겠지’라는 생각에  스크린 화면을 따라했다. 나중에는 응용까지.

후문이지만 둘째 날 중계를 마치고 모 선배가 생중계를 봤다면서 ‘처음해본 것 치고 잘하던데’라는 칭찬도 들을 수 있었다.



셋째 날 : 아줌마들 열기에 휘청거리다


아침부터 햇살이 따가웠다. 이날은 둘째 날과 다르게 축제 스케줄이 빡빡했다. 농산물경매에 이어 아줌마 스타퀸 본선에 페스티벌 공연까지.

6시 넘어서 시작되는 콘서트나 음악회는 추워서 옷을 껴입을 정도였지만 그 이전에 있는 공연들은 더위와의 한판 승부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카메라 단상에 올라가 햇빛을 정면에 받는 나로서는 군인 시절 유격을 받는 그 기분이었다.

다행히 시간은 잘 가더라. 어느덧 뜨거운 햇빛이 물러가고 아줌마 열린 음악회 시간이 됐다.

어느새 관람석은 아줌마들의 물결.

김혜영, 진요근, 나몰라패밀리 등 가수들의 공연이 끝나고 하이라이트 시간 가수 남진의 노래가 시작됐다.

집에 계신 우리 어머니 출근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남진 공연 때 멀리서 떨어져서 보라고.

어머니 말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태어나서 TV로만 보던 장면이 눈 앞에 펼쳐졌다.

무대의 앞 공간은 어느새 광란의 도가니로 변해있었고 남진을 보기 위해 밀려드는 아줌마들로 카메라 단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단상의 흔들림을 따라 생중계 화면도 쉴새 없이 흔들렸고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몇 번에 걸쳐 아줌마들은 단상에 있는 나를 위협했다. 무섭더라.

남진의 무대는 20여분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나의 생중계는 아줌마들의 열기로 인해 몇 번의 위기를 넘기고 나서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 날 : 거만해진 나…나 기계치 맞아?

며칠 카메라를 잡아봤다고 그새 거만해졌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카메라가 왠지 친숙하게 느껴졌다.

얼마 남지 않은 축제 일정도 내 어깨를 가볍게 만들어줬다. 팔씨름대회, 농산물경매, 골든벨, 행운권 추첨까지 나름 원할 하게 중계를 했다.

실시간 생중계 화면 채팅창에 좋은 중계 고맙다는 인사도 들을 수 있었다.

뿌듯하더라. 첫 날 나를 불안하게 했던 실수에 대한 두려움, 더위와 추위, 아줌마들의 위협 모든 게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줌마들과 더불어 생중계 카메라와 함께 한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내년 아줌마 대축제도 실시간 생중계를 한다고 하더라.

과연 내년에도 내가 생중계 카메라를 잡게 된다면 어떨까.

Posted by 꼬치 트랙백 0 :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