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보육원에서 생활해 온 A(25·여) 씨는 지난해 전문대를 졸업했다. 취업난으로 직장을 구하지 못한 A 씨는 전단 배포 일을 하며 찜질방 등에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 왔다. 수중에 돈이 떨어진 A 씨는 추위를 피하려 충북 청주의 한 PC방에 들어갔다. 종일 굶었던 A 씨는 자장면을 시켜 배를 채웠다.

포만감도 잠시, 음식값과 PC방 요금 1만 2000원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종업원이 화장실 청소를 하는 사이 줄행랑을 치려던 A 씨는 주인에게 덜미를 잡혔다.

일용직 노동일을 하며 가정을 꾸려 나가는 B(48) 씨. 매일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지만 1주일째 허탕을 쳤다. 겨울방학을 맞아 용돈벌이를 위해 나온 건장한 체격의 대학생들에게 일감을 뺏기기 때문이다.

동료와 해장국 집에서 소주를 마신 B 씨는 추운 날씨 탓에 무작정 택시에 올라 타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에 도착한 B 씨는 택시요금 5000원이 없자 잔꾀를 부렸다. "돈이 없는데 집에 가서 얼른 갖고 오겠다"며 도망치다가 뒤쫓아온 기사에게 붙잡혔다.

경기불황으로 '현대판 빈대떡 신사'가 줄지 않고 있다.

18일 충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경범죄처벌법위반 혐의로 즉결심판에 넘겨진 사람은 모두 329명으로 한 달 평균 27명이다.

대부분 무전취식과 무임승차로 적발됐다. 2011년(361명)보다 8% 감소했지만 경기불황의 여파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즉결심판은 가벼운 범죄사건(2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해당)에 대해 정식 형사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고 '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에 따라 경찰서장이 청구해 이뤄지는 약식재판이다.

최근에는 상습적인 무전취식보다 경기불황을 반영하듯 생활형 범죄가 크게 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충북지역 음식점과 택시업계에서는 '무전취식·무임승차 주의보'까지 발령됐다.

청주의 한 식당 주인은 "음식 시켜 먹고 달아 나는 경우가 한 달에 한 번 꼴"이라며 "경기가 좋을 때 같으면 불쌍한 사람 도와 준다고 생각하지만 요즘같이 힘들 때는 화가 많이 난다"고 토로했다.

개인택시기사도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돈 없는데 마음대로 하라'며 '나몰라라식'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요즘 같은 방학에는 학생들이 불황에 용돈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불법 아르바이트를 하다 적발된 사례도 부지기수다. 시급 4000~5000원을 벌기 위해 성매매업소 홍보용 전단을 무단으로 뿌리다가 적발돼 3만~5만원의 과료·벌금을 선고받는 것이다.

충북경찰청 서정명 생활질서계장은 "즉결심판에 회부되는 사례 대부분이 무전취식, 무임승차”라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이 경범죄로 처벌받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성진 기자 seongjin98@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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