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운 경제난으로 실직자와 노숙자가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대전역 주변 지하도 한 귀퉁이에서 노숙자가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shj0000@cctoday.co.kr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보다 노숙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이 더 힘들어요."

3일 오후 7시, 본보 취재진은 추운 날씨 속에서 노숙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대전역 광장을 찾았다. 이날 날씨는 영하 7도를 가리켰다.

대전도시철도 대전역과 대전역 광장을 잇는 지하통로는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였으며, 지하에는 노숙자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대전역부터 충남도청까지 이어지는 중앙로 일대는 형형색색의 조명트리와 분주한 시민들 모습에서 낯익은 연말연시 풍경이 느껴졌지만 시민들의 왕래가 적은 지하철역 지하통로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초저녁부터 잠이 든 P(62) 씨를 거칠게 깨운 사람은 지하철 역무원.

"아저씨, 여기서 주무시면 안 됩니다. 일어나서 집으로 가세요"

P 씨는 역무원을 향해 연신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힘든 몸을 일으킨다.

밤 11시가 넘으면서 겨울 추위는 더욱 매섭게 살갗을 아렸고, 지하통로의 냉기를 피해 노숙자들은 대전역 2층 대합실로 자리를 하나 둘씩 옮기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이 나오는 화장실에 푹신한 의자까지 있는 대전역 대합실은 노숙자들에게 천국으로 불린다. 이 천국에 얼마 전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20여 년 전 아내가 가난을 이유로 가출한 뒤 홀로 아들을 키워 온 B(64) 씨가 한 달 전 이 곳 대전역 대합실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노숙자들, 모두는 각기 저마다의 사연도 많고, 슬픔도 많지만 B 씨도 남모르는 아픔 속에 20년을 보내왔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개인사업을 했던 B 씨는 20년 전 한 번의 잘못된 보증으로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빚더미를 피해 아내는 집을 나갔고, 막노동을 하며 아들을 키웠지만 장성한 아들은 수년 전 아버지 B 씨를 버리며 전화번호마저 바꾼 것이다.

홀로 남겨진 B 씨는 극심한 경기침체에 건설 일용직마저 구할 수 없는 형편으로 내몰리면서 노숙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이미 오전 4시. 새벽녘이 짙어질 무렵 이 일대 노숙자들의 움직임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최근 극심한 불황 탓에 건설일용직 근로자들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면서 대부분의 일자리가 없어졌지만 경제적 재활을 꿈꾸는 노숙자들은 각자 인력시장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대동 인력시장으로 가는 K(45)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엿한 중소기업 사장이었다. 거래처의 연쇄부도로 수금하지 못한 돈이 쌓이면서 결국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최종 부도 처리됐다. 빚쟁이들을 피해 가족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혼자 막노동이라도 해야 해서 노숙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며 사연을 털어놨다.

그는 이어 "내가 직접 노숙을 해보니 그동안 내가 가졌던 이들에 대한 편견이 잘못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숙은 현재의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아닌 미래를 가는 길에 잠시 다른 길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에게 가장 힘든 일은 차디찬 겨울의 냉풍이 아닌 ‘노숙’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과 외면이었다.

대전시노숙인상담보호센터 관계자는 "시민들이 보는 극소수의 노숙인들이 술에 찌든 채 사회의 부적응자로 살고 있지만 90% 이상의 노숙인들은 단지 경제적 위기를 맞아 잠시 노숙이라는 방법을 택한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사회가 이들을 보호하고, 격리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만이 노숙을 없애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박진환·천수봉 기자 pow17@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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