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의 조상' 척박한 호수위 백조처럼 날다  
[천연기념물 철새의 서식지 몽골을 가다]⑤서서히 내몰리는 개리의 아픔

2008년 08월 21일 (목) | PDF 11면 우희철 기자

   
▲ 개리의 번식지로 널리 알려진 바가노르 지역의 호수는 지속된 가뭄으로 절반 이상이 말라버렸고, 번식에 꼭 필요한 갈대숲은 유목민들이 키우는 말과 양들로 인해 모두 망가져 번식지로서의 역할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해 버렸다.
개리(Swan Goose)는 기러기목 오리과(기러기류)에 속하는 물새다. 이마와 부리 사이(기부)에 흰 띠가 있는 데 미성숙 개체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뒷머리에서 뒷목에 이르는 부분은 어두운 붉은 갈색이다. 앞목은 엷은 갈색이고 기부에 있는 흰색 띠를 따라 어두운 갈색 선이 있다. 깃 끝부분은 흰색이며 가슴은 엷은 황갈색으로 아래로 갈수록 엷은 색채를 띤다. 홍채는 붉은 갈색이고 다리는 노란색보다 짙은 오렌지색이며 부리는 검은색으로 비교적 긴 편이다. 보기 드문 겨울새로 호수나 논, 풀밭, 습지, 작은 택지, 해안, 간척지 등에서 살며 아침·저녁으로 논과 간척지에 무리를 지어 내려앉아 먹이를 찾는다. 수생식물과 조류(藻類), 벼, 보리 등이 주요 먹거리다. 가금화 된 거위 원종으로 거위와 같은 소리로 운다. 하천의 섬이나 작은 도서 등지에 번식하며 땅위의 움푹 들어간 곳에 마른 풀줄기를 깔고 접시 모양의 둥우리를 튼다. 산란기는 4월 중순경이며 산란수는 4∼6개이고 10월에서 이듬해 3월 사이 월동한다. 알은 크림빛을 띤 흰색이다. 한국에선 천연기념물 제325-1호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글싣는 순서>

ⓛ천연기념물의 보물창고 몽골

②독수리 왕국 천연 둥지의 신비-상

③독수리 왕국 천연 둥지의 신비-하

④위풍당당한 자태…검독수리를 만나다

⑤서서히 내몰리는 개리의 아픔

⑥살아 숨쉴 곳 잃어가는 고니의 비애

⑦희망의 비상…한반도에서 겨울나기

⑧한국·몽골…정책연구의 현주소

⑨천연기념물 철새를 위한 과제
'개리'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새에 관심이 있는 탐조가나 전문가들에겐 귀에 쏙 들어오는 이름이지만 여간해선 '잘 모른다'는 대답이 일반적이다. 그도 그럴것이 개리는 겨울철 한강·임진강 하구에 가야 볼 수 있는 희귀 조류다. 전 세계적으로 5만 마리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개리는 갯기러기를 줄여 부른 이름이다. 'Swan Goose'라는 영문명으로 풀어보면 백조같은 거위의 모습을 보인다. 아주 오래 전에 야생 개리를 잡아 집에서 키웠는 데 이렇게 가금화 된 것이 지금의 거위라고 한다.

한마디로 개리는 거위의 조상인 셈이다.

이런 연관성 때문인지 개리는 거위와 생김새가 많이 닮아 있다. 목 앞쪽의 밝은 갈색과 뒤쪽의 어두운 갈색이 목의 중앙을 따라 뚜렷한 경계를 이루는 데 이런 특징은 거위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습성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개리의 길고 날렵한 부리와 머리 모양은 대부분 오리과 새들이 두툼한 형태의 부리를 가진 것과 대비된다. 순전히 먹이를 먹는 습성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2005년 몽골 아이크 호수와 궁갈루트에서 촬영한 개리의 모습.
개리의 주요 월동지역은 금강·한강·임진강 하구 기수역(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하구역이라고도 함)이다. 삼투압 등 자연적 현상 때문에 생물의 종류와 양이 풍부하고 특히 부드러운 모래층이나 갯벌이 개리의 서식환경을 제공한다.

겨울철, 이 곳에 가면 개리가 긴 목을 쭉 빼고 갯벌 깊숙한 곳까지 머리를 쳐박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매자기 풀의 덩이 뿌리를 골라먹는 것이다. 땅을 파기 위해 길고 날렵한 부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머리 전체가 진흙으로 뒤범벅이 돼 불편할 것도 같지만 개리의 깃털에는 유분이 풍부해 물과 진흙이 달라붙지 않고 그대로 씻겨 내려간다. 어느 정도 배불리 먹었다 싶으면 따뜻한 양지에서 암컷들은 부리로 깃털을 가다듬으며 열심히 몸단장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향에서도 신음하는 개리

전 세계적으로 남아있는 5만여 마리의 개리 가운데 80%가 몽골에서 서식하면서 번식한다. 특히 러시아, 중국과 접한 몽골 동부 다구르(Daguur) 아이막은 천혜의 개리 서식지로 손색이 없다. 동북부 지역의 호흐(Khukh) 호수와 부요르(Buir) 호수가 대표적인 데 모두 사람의 손이 거의 닿지 않는 지역이다.

   

일단 취재진은 개리의 서식환경 조사를 위해 동쪽 끝 다구르 지역 못지않게 개리의 서식지로 잘 알려진 바가노르 지역을 선택했다. 울란바타르에서 동쪽으로 150㎞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데 이 곳은 몽골에서 가장 긴 헤르렝강이 관통하는 지역이다.

바가노르에 여장을 푼 뒤 곧바로 물새들의 번식지로 잘 알려진 아이크 호수와 궁갈루트 호수로 향했다.

취재진은 개리와 고니 등 겨울철새들을 여름에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차 있었지만 우리를 안내한 반디(울란바타르 제39학교 생물 교사) 씨는 이 것 저 것 서식환경을 설명하면서도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지속적인 가뭄 탓에 올해는 어떻게 변했을 지 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바가노르 시내에서 출발해 드넓은 초원을 40분 정도 달렸을 무렵 초원 위에 작은 호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크 호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반디 씨의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오랜 가뭄 탓에 호수의 크기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개리의 번식에 필수적인 갈대숲도 누군가에 의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개리나 고니가 도저히 쉴 수 없는 환경 그 자체였다. 이미 그 곳은 유목민이 키우는 말과 양 등 가축들이 점령한 상태였다. 이 가축들이 물을 먹기 위해 호수로 밀려 들어오면서 이들에 의해 파손된 둥지도 볼 수 있었다. 독수리와 검독수리 등 맹금류에겐 가축이 먹잇감이 되지만 물새들에겐 재앙인 셈이다. 인근에 위치한 궁갈르트 호수도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유목민을 통해 이 곳 저 곳 다른 호수를 찾아 봤다. 두 시간여를 헤맨 끝에 후크노르라고 불리는 호수가 있다는 곳에 도착했는 데 역시나 가뭄 탓에 호수 전체가 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휴양소까지 갖췄을 정도로 비교적 유명한 호수였는 데 올 봄에 호숫물이 모두 증발했다고 한다.

ㅤ▲한국 월동지역 훼손도 마찬가지


   
▲ 바가노르 호숫가에서는 개리의 둥지는 발견하지 못하고 황오리가 번식하는 것으로 보이는 둥지만 볼 수 있었다.
몽골에서 번식한 개리들이 한국에 도래한 것은 1990년 대 초반부터로 알려졌다. 지난 1993년 11월 한강·임진강 하구에서 750여 마리가 관찰된 이래 최대 2500여 마리까지 모습을 보였지만 지속적으로 개체수가 감소하는 추세다. 이 곳을 찾는 개리들은 모두 러시아와 몽골의 접경지역인 다구르 지역에서 여름을 난 것들이다.

금강 하구도 이들의 주요 월동지역 가운데 한 곳이다. 금강하구둑이 완공된 이후 상류로부터 밀려와 퇴적된 토사에 의해 새로운 모래섬이 웅포에서 하구둑까지 약 6개 정도 형성돼 있는 데 이 모래섬을 중심으로 개리가 채식과 휴식을 하고 있다.

이 모래섬은 유기물질이 함유된 부드러운 흙으로 구성돼 있어 갈대 등 수생식물이 잘 자라며 개리가 식물 뿌리를 파 먹기에 좋은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한강·임진강 하구가 이들의 중간 기착지라면 금강 하구나 낙동강 하구, 주남저수지 등은 개리들이 마음 내키면 찾는 휴식처인 셈이다. 해마다 이 곳에선 10여 마리 안팎의 개리가 관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 데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다. 그 만큼 보기 힘든 철새라는 얘기다. 주요 월동지인 한강·임진강 하구도 개리 입장에선 이제는 절대 안심할 수 있는 월동지가 아니다.

개발광풍에 서식환경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회색 빌딩 숲이 이들의 서식지를 조금씩 조금씩 옥 죄어 가고 있다. 이 곳 습지지역만 보호구역으로 지정됐을 뿐 개리의 휴식처인 인근 농경지엔 벌써부터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상태다.

몽골=이기준 기자 poison93@cctoday.co.kr

사진=우희철 기자 photo291@cctoday.co.kr

  [인터뷰]반 디 울란바타르 제39학교 생물교사

"유목민 가축방목·가뭄 호숫가 번식지 황폐화"

- 개리 서식지가 사라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들을 보호할 수 있나.

"개리를 보호·관리하기 위해선 전반적인 서식지 보전과 적합한 관리대책을 실행해야 한다. 개리는 번식 시기에 매우 민감해 둥지에 사람과 기타 동물이 접근했을 때 알을 버리기 일쑤다. 또 어미새가 둥지를 비운 사이 가축들에 의해 둥지가 파손되기 쉽다. 이런 점을 인근 유목민들에게 잘 알려야 한다. 호수 인근에 울타리를 쳐 동물이 드나드는 것을 막을 필요도 있다. 개리의 활동을 가까이서 방해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 아이크 호수와 궁갈루트 호수가 왜 이렇게 황폐화 됐나.

"일단 자연적인 영향이 있다. 가뭄 때문에 호수 자체가 그 모습과 기능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인구 유입이 많아졌다는 데 있다. 몇 해 전 인근에서 광산개발이 시작됐고 이에 따라 사람의 손을 타기 시작했다. 유목민들이 지속적으로 인근에 터를 잡고 가축을 방목하는 것도 물새들의 번식을 방해하는 요소다. 가축이 드나들면 개리가 번식을 할 수 없다. 개리는 갈대숲이 우거져야 갈대숲 은밀한 곳에 둥지를 틀고 번식을 하는 데 갈대숲 자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유목민이 모두 땔감으로 사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에코투어리즘(생태관광)도 활성화돼 사람이 발길이 잦아진 것도 한 원인이다."

- 희귀조류 보호를 위한 몽골 정부의 관리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국제적인 희귀 조류에 대한 연구가 많아지면서 정부도 자연보호구를 설정해 이들을 보호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시기도 늦었다. 몽골 중부지역에도 개리의 주요 번식지가 많았지만 벌써 황폐화 돼 개리가 떠난 지 오래다. 이따금 개리들이 쉬어가기도 하지만 예전의 모습을 찾긴 어려워 보인다. 이제는 몽골 동부 끝 자락에나 가야 개리를 관찰할 수 있다. 그나마 이 지역들이 대부분 자연보호구로 지정됐다는 게 큰 위안이다.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개리 서식지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기준 기자
본 시리즈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트랙백 0 : 댓글 0